악마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한나 아렌트(Hanna Arendt)는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재판을 관찰하면서, “세상의 모든 잔혹한 일들을 모아 놓은 것 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우리의 도덕적 상상과는 달리 “그가 도착적이거나 가학적인 괴물(“푸른 수염의 사나이”)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라고 술회한다. 그는 이아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진부함에 대하여

결정과 행위에 의해 벌어진 현상이나 사건을 돌이킬 수는 없다. 유리잔은 이미 깨졌고 물은 쏟아져 버렸다. 그러나 그 사건과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의미는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고, 또 변해야 한다. 관점과 의미는 삶 속에서 매순간 생산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항상 과거로 되돌아가 그것을

베리떼

영화 <아이들>은 “팩트(fact)는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밑바닥에 품고 있는 작품이다. 문제는 팩트가 모호하다는 점 때문이다. 시체 옆에 칼을 든 남자가 서 있다. 그는 죽이기 위해 칼을 찌른 후인가? 아니면 살리기 위해 찔려 있는 칼을 뺀 것인가? 더우기 팩트에는 너무 많은

배치는 메시지다

사물들의 배치, 이미지들의 배치, 단어나 소리의 배치, . . . 이 같은 일정한 형식의 배치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맥루한(Marshall McLuhan)식으로 말해 메시지를 창조한다. 의미나 메시지는 의지일수도 있고, 바램일수도 있고, 기억일수도 있다. 또는 배치가 환기하는 쾌감일수도 있고 불쾌일수도 있다. 나무 아래에 기대어

이창

<이창>(Rear Window)에서의 첫 시퀀스는 히치콕 특유의 프레임 외부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카메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올 요소들을 버리거나 자른다기 보다는, 재프레임을 통해 새로운 집합을 더 많이 담아내기 위해 추리의 요건이 될 수 있는 모든 단서들, 물건들, 상황들, 정황들을 프레임 안으로 주어

더 헌터: 이아고의 희생자들

최근에 나온 <더 헌터>(The Hunter)는 도덕적 확신에 찬 제스처들(아! 교장선생님!)이 얼마나 터무니 없고 우스꽝스럽게 남을 해칠 수 있는지를 고발하는 영화이다. 아니,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어리석음 4부작’의 하나인 오셀로(Othello)에 등장하는 이아고(Iago)처럼, ‘확신’ 자체가 이미 하나의 지독한 가해이다. <더 헌터>에서 한 어린아이의 어처구니

Christian Metz의 영화기호론 비판

영화 기호론자인 메츠(Christian Metz)는 스승인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기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미지 자체에 언어적 기호체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영화기호론’(a semiotics of the cinema)은 구조주의 언어학이 언어에 대해 구사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영화의 의미작용 메커니즘에

정동의 색조

정동(Affects)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이 될까? 우선 어둡고 칙칙한 색은 맞지 않을 것이다. 정동은 관계, 다양, 이행, 변화, 표면의 효과 같은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유동성이 느껴져야 하고, 어렴풋 하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시각적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어두운 색은 그 다양한

허구의 힘

베르그송은 사회가 생명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가 생명의 근저에 있다고 생각했다. 생명은 위계질서로 이루어진 분업의 체계이며, 이로써 개별적인 유기체는 사회적 유기성을 위해 계획되고 구축된다. 생명의 질서에서 개별 유기체들은 사회 전체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은 자연의 유기화

lip jinbo

여론 조사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것이 어떤 사실을 반영한다는 가정하에, 여론 조사를 보면 정의당의 지지도는 최하위이다. 국정농단 사태로 수구보수는 괴멸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도 정의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최하위다.  여론조사만 따로 떼어내어 다소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것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나 “친일” 보다도

프레임의 외부: 까슈와 태피스트리

프레임에 관한 논의는 자연히 “장-밖”(out-of-field, hors-champ)의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들뢰즈에게 프레임과 그 외부의 문제는 지각 가능한 영역과 지각 불가능한 영역, 현실태와 잠재태, 또는 집합과 전체의 구분을 변주한 문제로 볼 수 있다. 베르그송주의자인 들뢰즈는 프레임-외부를 프레임의 “부정”으로 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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