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떼

영화 <아이들>은 “팩트(fact)는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밑바닥에 품고 있는 작품이다. 문제는 팩트가 모호하다는 점 때문이다. 시체 옆에 칼을 든 남자가 서 있다. 그는 죽이기 위해 칼을 찌른 후인가? 아니면 살리기 위해 찔려 있는 칼을 뺀 것인가? 더우기 팩트에는 너무 많은

배치는 메시지다

사물들의 배치, 이미지들의 배치, 단어나 소리의 배치, . . . 이 같은 일정한 형식의 배치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맥루한(Marshall McLuhan)식으로 말해 메시지를 창조한다. 의미나 메시지는 의지일수도 있고, 바램일수도 있고, 기억일수도 있다. 또는 배치가 환기하는 쾌감일수도 있고 불쾌일수도 있다. 나무 아래에 기대어

더 헌터: 이아고의 희생자들

최근에 나온 <더 헌터>(The Hunter)는 도덕적 확신에 찬 제스처들(아! 교장선생님!)이 얼마나 터무니 없고 우스꽝스럽게 남을 해칠 수 있는지를 고발하는 영화이다. 아니,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어리석음 4부작’의 하나인 오셀로(Othello)에 등장하는 이아고(Iago)처럼, ‘확신’ 자체가 이미 하나의 지독한 가해이다. <더 헌터>에서 한 어린아이의 어처구니

Christian Metz의 영화기호론 비판

영화 기호론자인 메츠(Christian Metz)는 스승인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기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미지 자체에 언어적 기호체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영화기호론’(a semiotics of the cinema)은 구조주의 언어학이 언어에 대해 구사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영화의 의미작용 메커니즘에

lip jinbo

여론 조사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것이 어떤 사실을 반영한다는 가정하에, 여론 조사를 보면 정의당의 지지도는 최하위이다. 국정농단 사태로 수구보수는 괴멸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도 정의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최하위다.  여론조사만 따로 떼어내어 다소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것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나 “친일” 보다도

프레임의 외부: 까슈와 태피스트리

프레임에 관한 논의는 자연히 “장-밖”(out-of-field, hors-champ)의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들뢰즈에게 프레임과 그 외부의 문제는 지각 가능한 영역과 지각 불가능한 영역, 현실태와 잠재태, 또는 집합과 전체의 구분을 변주한 문제로 볼 수 있다. 베르그송주의자인 들뢰즈는 프레임-외부를 프레임의 “부정”으로 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정동영화와 잠재성

1. 정동은 “느껴지는 것”이다. 지각하거나 생각하기 이전에 어떠한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 직접성으로 인해 정동은 직관의 대상이다. 가령, 붉은색에서 느껴지는 “붉음” 그 자체는 붉은색을 말로 전달하거나 생각으로 떠올리기 전의 근원적인 실재성을 가진다. 그것은 ‘붉지 않다’라고 말할 때조차 느껴지는

나는 인공지능이로소이다

야구 중계를 본 지가 하도 오래되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에 야구 중계를 보다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희한한 장면 하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심판의 판정을 판정하는 심판의 존재입니다.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상황을 두고 심판이 아웃을 선언합니다. 그랬더니 아웃을 당한

채플린과 키튼: 휴머니즘적 도구주의와 무정부주의적 기계주의

채플린의 코미디 ‘소극’(burlesque)은 계열들의 조우와 충돌의 집합이다. 즉 행동의 계열들이 있고 이 계열들 사이에 다른 계열이 삽입되어 질서 전반이 엉켜 버리는 것이다. 여자와 춤을 추다가 다른 여자의 춤으로 끼어든다든가, 길을 지나가다가 앞에서 다가오는 소년과 마주치면서 소년에게 지팡이를 낚인다든가, 국수를 먹다가

스트로하임과 브뉘엘: 엔트로피와 영원회귀

스트로하임(Erich von Stroheim)과 브뉘엘(Luis Bunuel)의 차이—개체발생론적 하강과 계통발생론적 반복—에도 불구하고 자연주의의 시간은 모든 개체와 종이 저주를 받은 것처럼 퇴락의 길로 추락하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물론 지속으로서의 시간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 하나는 생명의 질서를 보존하고, 개체와 세계를 분할-형성하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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