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영화, 형상영화의 변이

추상영화, 형상영화의 변이

무리수적 절단과 공약불가능한 관계로 특징되는 시간의 직접적 현시라고 하는 현대영화로의 이러한 추세는 추상영화, 형상영화에도 해당된다.

1. 기하학적 시기: 지적인 요소들의 통합과 분화에 관여하는 수직축과 이 요소들의 운동-질료로서의 연쇄와 변형에 관여하는 수평축, 이 둘의 교차를 통한 기하학적 형상들의 시기 => 한 축에서 다른 축으로, 때로 형상에 칸딘스키적인 선적인 ‘긴장’을 전달(에겔링의 <대각선 교향악>), 때로는 폴 클레와 유사한 점상의 확장을 전달(리히터의 <리듬23>) 형상을 움직이는 강력한 유기적 삶이다.

2. 단절된 이미지들: 점과 선은 형상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삶 역시 유기적 재현의 축으로부터 해방된다. 역량은 비-유기적 삶 속으로 이행해가며, 이 삶은 단절된 점들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이끌어낼 연속된 아라베스크를 필름 위에 직접 그리거나, 혹은 어두운 필름의 빈 공간에 점들이 깜박이게 함으로써 이미지를 창출해낸다. Norman McLaren의 카메라 없는 영화가 그 예이다. 카메라로 찍은 것이 아니라 필름에 무늬들을 새겨넣거나 그린 것들의 움직임 . . .

3. 깜박임, 재-연쇄: 그러나 이러한 점과 선의 해방된 요소들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희거나 검은 스크린이 모든 이미지들의 바깥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될 때, 그리고 빛의 깜박거림이 무리수적 절단으로서의 틈새들을 증식시키게 될 때(토니 콘라드의 <깜박거리는 빛>은 스크린의 검은색과 흰색이 번갈아 깜박거리는 것이 전부이다), 또한 루프의 방식을 통해 재-연쇄가 행해질 때(조지 랜도우의 <정제된 버터 표면에서 부풀어오른 영화>), 세번째 시기가 출현. 이로써 영화는 뇌의 과정을투사하지않고서는 영화의과정을 기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깜박이고 재-연쇄를 행하고 또 연이은 루프들을 만드는 뇌, 이것이 바로 영화이다. Lettrism은 이미 이 방향으로 아주 멀리 가 있었다. 기하학적 시기와 ‘새기는’ 시기 이후, 레트리즘은 카메라 없는 확장된 영화, 또한 스크린도 필름도 없는 영화를 예고. . . . 요약하자면, 두뇌를 구성하는 세 가지 구성요소는 점-절단, 재-연쇄, 그리고 흰 혹은 검은 스크린이다.(영화2, 418) 베르그송이규정했듯이 뇌는 저장소가 아니라 기능이다. 전신전화국 같은.

(지각-이미지 장의 미국실험영화 관련 부분에 각주로 추가해서 간략히 소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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