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정치

정동 정치

마수미의 <정동정치>(Politics of Affects)라는 책을 번역 중이다. 이 책은 마수미와 몇 몇 동료들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대화체로 되어 있어 작업이 쉽게 될 줄 알았는데, 왠걸~ <가상계> 만큼이나 난해하다.
번역 내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이들이 대화를 이런 식의 말투와 언어 스타일을 구사하는 것이 실화인가? 무례해 보이기도 하고, 아마추어들 같기도 하고, . . . 사실 이들은 대화를 나눈다기 보다는, 드레이어의 영화에서 인물들의 대화처럼 자기 망상적이고, 각자만의 회로에, 또는 그들만의 회로에 갇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기는 자기독백으로 채워진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상대방이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On the side of bare activity, the potentials mutually included as tendencies are also supernumerary, in the sense that you cannot divide them from each other and come up with a count, because in addition to each tendency there are the zones of indistinction between tendencies corresponding to their inter-involvement with each other, and there are also the transitions between tendencies turning over in agitation, not to mention any new tendencies that might be brewing in all that complexity.

“맨 활성의 측면에서 보면, 경향성들로 상호 포함되어 있는 그 잠재들 또한 초량적입니다. 그들을 각각으로 나눌 수 없으며 셈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각각의 경향성에 더하여 서로서로 상호-포함에 상응하는 무차별의 지배들이 경향성들 사이에는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그 모든 복잡성 속에서 달여지게 될 새로운 경향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요하는 가운데 뒤집히는 경향성들 사이에는 이행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건(event)의 잠재성에 관한 이 구절이 보여주는 언어 구사는 모든 인터뷰에서 개진되고 있는 스타일이다. 모르긴 해도 대화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기 보다는, 녹취록을 다시 문어체로, 책을 내기 위해 글로 조탁해서 쓴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다소 제한되어 있고, 풍부한 자료들을 동원하지 않아서 그런가 왠지 회로에 갇힌 논의들의 반복으로 느껴진다. “열린 전체”가 이 책의 핵심적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9월말인가 10월초에 원고 마감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번역은 이미 끝냈고, 보충이 필요하거나 수정이 필요한 것을 골라 재검토 하는 중이다. <가상계>를 번역할 때만 해도 얼떨떨하여 마수미가 말하려는 것이 다소 신비하게 느껴졌는데, 당시에 언뜻 언뜻 밀려왔던 회의감이 확인되는 시간이었다.

“정동”이라는 주제가 지금 중요하긴 하다. 마수미도 밝히듯이 그것은 미학적인 차원에 대한 관심의 강화이다. “정동정치”란 일종의 “미학정치”라 할 수 있다. 우선 지금 시대가 정체성 집단의 세력을 통해 정치가 이끌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노동자, 자본가, . . 이러한 정체성은 대단히 모호해지는 가운데, 자본주의는 더욱 더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미시화된 권력의 침잠의 지대들을 발견해야 하고, 그것과 맞설 수 잇는 새로운 동력들을 찾아야만 한다. 정동정치는 그러한 거시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미시적인 수준에서 그 동력을 찾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경험에 대한 관념적 추상이 아니라, 경험의 실체(entity)이고, 바로 이 경험의 실체가 정동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예술과의 긴밀한 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마수미는 예술에 대한 논의가 없다. 전혀!(다른 책에서는 했나?) 그의 논의는 거의 과학에 가깝다. 제시하는 자료 역시 철학적 개념 몇개, 심리학, 생물학 등에서 가져온다. 미디어에 관한 그의 관심도 자료에 기반을 두기 보다는 자신의 사색에 의존한다. 그는 자료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색을 통해 글을 쓴다. 그는 책을 많이 읽는 학자이기 보다는 실험적인 활동 등을 통해 그 결과를 토대로 사색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 같다. 그러려면 실험의 내용과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제시가 필요하지만, 그 조차도 하지 않는다.

어서 책을 덮고 다른 쪽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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