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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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Banality of Evil은 그것이 표방하는 악에 관한 문제보다는, 우리가 ‘정상적인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선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논의처럼 보인다.

아렌트의 용법에서 banality는 대략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악은 지각 가능한 특별한 형상을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일상적이며, 누구나 그 대리인이 될 수 있으며, 누구나 악을 실천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평범성’의 의미이고,

악은 상투적이고 ‘진부함’의 산물이라는 의미가 다른 하나이다. 언어의 상투성이 사유의 진부함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전체화된 파시즘적 인간의 일상적 이면을 드러낸다. 상투어는 사회가 허용하는 정상성의 규준으로 기능하면서, 이를 통해 개인들은 현실의 힘, 변화의 힘, 심지어 죽음의 힘 조차도 느낄 수 없는, 회로 속에 갇혀 버리게 된다. 나아가 사회 전체가 현실과 단절된 거대한 하나의 회로가 된다. 이것이 바로 판사들이 아이히만의 진술들을 통해 느꼈던 “공허”이다.

나치 전범의 재판 과정에서 그녀가 발견한 악의 실체는 이 두 수준에서 배태되고 있다.

banality의 이 두 용법은 정확히 지금 우리의 조건을 이루는 정상성의 상태,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선의 상태를 재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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