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또넹 아르또

아또넹 아르또

아르또(Antonin Artaud)는 자신의 “잔혹극”(Théâtre de la Cruauté) 이론에서 은유나 서정시가 가지는 근원적 신화의 이미지를 언급한다. 여기서 근원적 신화의 이미지란 감각과 기억의 덩어리, 즉 감각 속에 내재된 기억 또는 기억 속에 내재된 감각이다. 은유는 세계를 사유나 유추 또는 재현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펼친다. 시의 구체성이란 다름 아닌 감각적 질료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그 때의 감각이란 현재 수용되는 감각이 아니라, 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기억과 연결된 감각이다. 예컨대 여기에는 없는 “고향”이라는 막연한 총체로서의 재현된 이미지가 아니라, “고향의 냄새”라는 직접적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은유는 감각적 기억 안에서 시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이로써 드러나는 것은 즉각적이고도 무상한 순수현존이다. 그것은 “원시인이 소유하고 있는 신화적 관념화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근원적 신화의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다.(프랑코 토넬리, <잔혹성의 미학>, 동문선, 2001. p. 26.) 아르또의 잔혹극이 추구하는 바, 바로 그 직접적 현존이 우리의 사유에 가하는 강요이다. 사유의 결과로서 파생하는 지식이 아니라, 그 반대로 사유를 강요하는 사건, 두뇌와 신경세포에 충격과 진동을 일으키는 지식의 근원적 배아를 창조하는 것, 이것이 예술과 연극의 길이라는 것이다.

p.s. 그렇다면 저 내재된 감각은 환각(hallucination)과 어떻게 다른가? 예술과 연극이 추구하는 것이 환각은 아니지 않은가? 환각은 두뇌가 조작하고 꾸며낸 이미지(fabulative image)이다. 그것은 지속과 시간 안에서 축적된 실재가 아니다. 따라서 실재성도 보편성도 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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