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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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Walter Benjamin)의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 국왕이 어릴적 맛보았던 산딸기 오믈레트를 다시 맛보고 싶어, 유능한 요리사를 불러 명령하였다.

50여년 전 짐의 선왕은 동쪽에 있는 나쁜 이웃 왕과 전쟁을 했었지. 그때 그 왕이 싸움에 이겨 우리들은 도망을 쳐야만 했어.
그래서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망을 쳐 드디어 어느날 어느 어두컴컴한 숲속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는 숲속에서 길을 잃어 허기와
피로에 지쳐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어느 조그만 오두막을 발견하게 되었지. 그 오두막에는 한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그 노파는 뛰어나와 우리를
반기면서 손수 부엌에 나가서 곧 무엇을 들고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산딸기 오믈레트였어. 내가 이 오믈레트를 한입 입에 넣자마자 나에겐 기적처럼
힘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고, 또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것 같았어… . 그러나 짐이 훗날 이 요리가 생각이 나서 짐의 전 제국을 뒤져 그
노파를 찾아보게 했지만 그 노파는 물론이고 그 노파의 산딸기 오믈레트를 요리해 줄 만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대가 만약 짐의 이 마지막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면, 짐은 그대를 사위로 삼아 이 제국의 후계자로 만들걸세. 그러나 만약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대는 죽어야만
하네.(『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0,
24-25쪽)

그러나 요리사는 한참을 생각 하더니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폐하! 정 그러시다면 교수형리를 곧장 불러주십시오. 물론 저는 산딸기 오믈레트 요리법과 하찮은 냉이에서 시작해서 고상한 티미안
향료에까지 이르는 모든 양념을 훤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믈레트를 만들 때 어떻게 저어야 마지막 제 맛이 나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 저는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든 오믈레트는 폐하의 입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폐하께서
그 당시에 드셨던 모든 양료(養料)를 제가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부엌의 따뜻한 온기, 뛰어 나오면서
반겨주는 온정, 어찌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이 모든 분위기는 제가 도저히 마련하지 못하겠습니다.(같은책,
25쪽)

결국 요리사는 목숨은 건졌지만 파면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간혹 벤야민을 신비적이라고, 독일인 답지 않다고 말들을 한다. 그들이 주로 객관화된 현실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벤야민의 글에 짙게 배인 생명론적 경향탓이 아닐까 싶다… 생명론의 관점에서 볼 때
아우라란 잘라내거나 요약하거나 나눌 수 없는 잠재적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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