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함에 대하여

진부함에 대하여

결정과 행위에 의해 벌어진 현상이나 사건을 돌이킬 수는 없다. 유리잔은 이미 깨졌고 물은 쏟아져 버렸다. 그러나 그 사건과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의미는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고, 또 변해야 한다. 관점과 의미는 삶 속에서 매순간 생산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항상 과거로 되돌아가 그것을 다시 끄집어내고 다시 살펴보면서 새로운 현재와 미래로 나아간다. 또는 과거는 항상 우리 주변을 맴돌며 현재의 행위들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귀환하면서 우리를 미래의 행위들로 이끈다. 그 유효성이 덜 할지는 모르지만,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더우기 과거, 현재, 미래는 이미 바로 여기에서 그 면면이 식별불가능한 크리스탈처럼 빙빙 돌아가며 공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그로부터 해석된 의미, 바로 이것이 우리 자신을 규정하며, 우리의 진짜 모습을 만든다. 영국 시인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말했듯이(“What you see is what you are”), 당신의 관점, 당신이 해석한 의미, 그리고 당신의 질문방식, 바로 그것이 당신 자신이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굴레로부터 바로 이 관점과 의미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삶과 역량을 말한다. 마르크스(Karl Marx)는 해석을 비판하고 변화(행동)를 주문했지만, 실은 해석은 이미 변화이고, 변화되는 것은 다름 아닌 해석이다. 그리고 진부함(진부한 영혼)이란 관점과 의미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몰이해 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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