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과 침묵

이항과 침묵

Klimt,_Danaë

현실은 대결로 점철된다. 대결 속에서 각자는 대결상대와 불가피하게 종속된다. 기호학에서 말하는 “이항”(binomial)이 이러한 종속을 잘 설명해준다. 대결을 하고 있는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가 자율적인 정신상태에서, 한 쪽이 다른 쪽 상대의 행위를 예측하여 그에 대한 대응으로 어떤 기능적 행위를 수행할 때, 이를 이항적 행위라고 한다.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처럼 “속임수”(feints)를 쓴다든가, “견제”(parries)를 한다든가, “핑계”(excuses)를 댄다든가, “함정”(traps)을 파는 행위가 이항의 좋은 예이다. 서부극에서 총잡이가 조심스럽게 걸어가면서 혹시라도 출현할지 모르는 적의 공격을 간파하기 위해 해대는 일련의 특이한 행동들 역시 이항적 행위를 잘 보여준다. 그 보다 일상적인 상황을 보면, “전시”(exhibition)를 하는 행위ㅡ미술품이나 상품 전시뿐만 아니라 보여지는 것을 가정한 모든 행위ㅡ가 이항의 전형이다. 이항적 행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적 타자를 전제한다. 개체들이 짝을 맺는 과정 속에서 삶과 현실이 실현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항은 삶의 기호, 현실의 기호이다. 대결이 아무리 치열하고 고되다 하더라도 고독의 고통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짝을 맺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대결에서 획득되는 반동의 추동력은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쉬운 것이며, 그것이 없으면 적이 그리워질 정도로 위안이 되기까지 한다. 무서운 것은 갈등과 대립이 아니다. 무서운 것은 질펀하게 들러 붙어있는 삶과 현실의 반동적 충동이 아니라, 예컨대 클림트(Gustav Klimt)의 다나애(Danaë)나 물뱀들(water serpent)의 이미지에서 근원적 질투를 자극하는 눈 처럼, 감아버리거나 외면하는 가운데 선언하는 거부와 침묵이다.

이항과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