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맛이 사는 맛

쓴 맛이 사는 맛

한국의 주류 언론은 대부분이 기업이나 정치권력이 돈을 대주고 사주(社主)가 되어 있기 때문에(주식의 형태로든 후원의 형태로든), 언론은 이 물주들의 잘못된 행태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거나 고발할 수가 없다. 대신에 언론은 이 물주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이러한 왜곡된 사실들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홍보 기관이 되어 있다. 세상의 창은 물주들을 향해 열려 있고, 물주들이 중심이 되어 세상이 돌아가고 있으며, 물주들의 부당한 처사들을 바로잡기 위해 아무리 고함을 지르고 사지를 비틀어도,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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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인터뷰 내용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인터뷰를 한 인물은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다. 효암학원 입구에 새겨 넣은 “쓴 맛이 사는 맛”이라는 문구의 뜻이 뭐냐고 기자가 질문하자, 그는 할머니들이 살기 힘들때 버릇처럼 하는 말이라며, “삶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봐서, 예사롭지는 않아 보인다. 이 분이 어떤 인물인지는 직접 검색을 해보시길 바라고, 이 인터뷰 내용 중에서 언론에 관한 그의 통찰과 당부가 눈에 들어와 이를 옮겨보겠다. [ ] 표시는 필자의 주석임.

기자의 질문. “언론이 진짜 언론이라는 말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자 그는 대답한다.

“우선 나는 언론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즐거울 줄 아는 것부터 배우셔야 할 것 같애요. 지식이 문제가 아니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별로 인정 못받더라도, 즐거울 수 있는 길을 아시면, 그게 결국 민중의 눈 높이가 되지 않을까요? [. . . 중략 . . .] 월급 많이 받는 언론기관은 썪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애요. 그럼 언론기관은 고생하고 굶어야 하느냐? [단호한 어조로] 사실 그렇습니다! 고생 안하는 사람이 왜 고생하는 민중과 한 편을 하겠습니까? 지가 같이 고생해야 민중과 한 편을 하죠. 댁들[기자를 지칭하며]이 지금 정직한 언론기관이 될 수 있는 길은 댁들이 지금 민중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긍정해야 됩니다. 사명감이 뛰어나고, 지식이 뛰어나고, 본인들이 삶에 대한 깨우침이 물론 있어야 되지만, 실제의 삶이 민중과 비슷하니까 정직할 수 있는 겁니다. 울화가 치미니까. 정직한 언론이 되는거죠. 모든 언론의 비판력은 통찰력 없이는 안 될텐데, 그 통찰력이 어디 지식에서 옵니까? [가슴과 배를 잡으며] 심보에서 오지. 삶에서 오지. 나는 통찰력은 지식에서 온다고 안 봅니다. 삶의 실천 속에서만 옵니다. 언론기관이 꼭 지도자일 필요가 없습니다. 민중과 함께하는 노력을 해주면 정말 고마운거지. 과도한 사명감은 일을 망칩니다. 틀림없습니다, 그건!”

쓴 맛이 사는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