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cetra

공간의 민주화

한국 사회의 공간의 구도이다. 공간에 대한 법의 구도이기도 하고, 머리 속에 있는 관념의 구도이기도 하고,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계급의 구도이기도 하다. 불합리하고, 억지스러운. 이 구도는 거시적으로 한국의 국토 전체 뿐만 아니라 모든 공간(학교, 도서관, 회사, 공공기관 등)에서 미시적으로 뿌리깊게 설정되어, 공간이 계급의 형식으로 상징화 된다. A구역에서 보면 B구역은 확실히 개, […]

그들은 왜 소통을 거부하고 벽이 되어가나?

사실상 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혼자서 살 수는 없다는 말이 맞다면, 어떤 식으로든 관계는 맺어질 것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는 대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조차도 주변의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하다못해 동물, 식물, 물건들과도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경우에 따라선 미물들이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소통을 절대적으로 거부한 것처럼 보였던 […]

헤게모니

우월한 위상에 도달하기 위해 상대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외교관이나 정치가가 아니어도 사회적 동물의 기본적인 전술처럼 보인다. 손을 누가 먼저 내밀것인가, 언제 악수를 할 것인가, 머리를 얼마나 굽힐것인가, 앉은 자리의 높이를 얼마나 할것인가 등은 정치-외교가 목적인 만남에서는 매우 초보적이고도 기본적인 고려 사항이라 할 것이다. 하수들처럼 어리버리하게 정신줄 놓고 있다가 이 […]

부작위

부작위(不作爲, Omission):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나 조처를 취하지 않는 소위 공무원의 소극적(negative) 태도라고 알려져 있다. 공무원 뿐 아니라 해야 할 의무나 책임을 진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기도 한다. 이것은 직무유기나 직무태만과는 다르다. 직무유기나 태만은 해야할 일을 명백히 하지 않는 것이지만, 부작위는 규범적으로 기대되는 일정한 행위를 충분히 하지 않는 경우이다. […]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상위 원리로서의 선(도덕)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고전적 정치관에서 벗어나 정치를 현실 내재적인 힘(fortuna)을 통해 사유함으로써 그것의 현대적 기념비를 세웠다. 예컨대,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군주는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지는 못할지언정 경외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경외심이란 두려움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군주는 인자함이나 자애심이 아니라 두려움의 아우라를 통해 통치를 해야 […]

궤도타기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에 정면으로 맞서거나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에는 힘의 한계가 느껴지거나 무모하다고 판단될 때 최선책은 무엇일까? 집채 만한 바위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아래는 ‘우리 자신들이’ 사는 집이 있다.  바위에 직접 맞서서 막을 힘이 현실적으로 없다. 깨부술 전략이나 도구도 없다. 그런 것들을 마련하기엔 너무 긴박하다. 그동안 뭘 했는지 후회가 […]

습관에 관하여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라는 캐나다의 문화비평가가 쓴 책 <정동정치>(Politics of Affect)의 한 구절이다. 정동정치란 크게 두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정동 양태들의 지배와 식민화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정동적 조율을 통한 관계의 창조를 의미한다. 전자는 정동을 권력의 관점에서, 후자는 운동의 관점에서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습관을 이러한 두 관점에서 […]

정동정치 또는 내재성의 정치

한국 사회의 정치와 미디어의 화두는 “내재성”(immanence)의 문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하면 내재성을 실현할 것인가? 이를 위해 ‘정동’과 ‘테크놀로지'(예컨대, flip-making technology)에 대한 통찰이 절실히 필요해진다. “내재적 관계 양태들의 위상학” 지도, 교육과 같은 외재성과 초월성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고, 간섭, 개입과 같은 내재성이 힘차게 떠오르며 퍼져가는 중이다. (전체는 부분의 산물이며, […]

(분)홍인

지금까지는 백인들을 유심히 볼 일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에 백인들을 좀 유심히 살펴보게 된 계기로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이 있다. “백인”(white man, white people)이라는 명칭은 잘못된 것이라는… 경험적인 명칭이기 보다는 통계적이고 추상적인 명칭이라는. 사실 나는 백인이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지 못한다. 영국인? 독일인? 북유럽? 그러나 이들도 구체적으로 가만히 살펴보면 많든 적든 […]

affective postmodern problem

물화된 모든 규정적 명사 앞에 “어떤~?”이라는 의문사로 질문할 때, 우리는 “정동적 포스트모던”(the affective postmodern)이 된다. 정동으로 파고든다는 것은 곧 “사물의 실체” 또는 “시간성”으로 근접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고, “모던”이 중심으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속도의 문제라면, “포스트모던” 또는 “디모던”(de-modern)은 중심과 속도 모두를 불능상태에 이르게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 어떤 국민? 민주주의! 어떤 민주주의? 노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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