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e

문학(예술)에서 본질과 표현: 전체성의 새로운 모델

본질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본질적인가? 문학(예술)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또한 문학에서 본질은 스타일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문학작품에서 관점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철학에서 전체화(부분과 전체의 관계)의 문제가 문학(예술)에서 어떻게 논의될 수 있는가? 전체화에 관련해 문학(예술)적 모델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가?

삶의 공간 또는 삶의 시간

그의 생태주의적 발상 자체는 많은 부분에서 좋은 의도를 담고 있다. 요지는 결국 산업이 만든 공간 환경의 비판이라 할 수도 있고, 공간을 구획하는 여러 모델들에 대한 소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적해야 할 대목이 없지 않다. 우선 공간과 시간을 혼동해서 언급히고 있는

도착의 조건

도착의 조건

사드(Donation Alphonse Francois Sade)의 소설 <소돔 120일>(Les 120 Journées de Sodome)에서는 인간이 취할수 있는 모든 관능적 욕망과 육체적 쾌락의 극단적 예시들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인간의 방탕한 성욕과 범죄에 관한 이야기 또는 행위 묘사로 채워진 하나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예의 주인

타인을 지배하는 위치에 오르면 지배자는 자유를 획득하기 보다는 지배권의 첫 번째 가주체(pseudo-subject)가 된다. 조지 오웰(George Owell)이 단편 <코끼리를 쏘다>(Shooting the Elephant)에서 잘 보여주었듯이, 지배자가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박탈한 제국주의가 좋은 예이다. 주인이든 노예든, 갑이든 을이든, 지배권 하에 있는 한 둘

묘사와 시간

알랭 로브그리예(Alain Robe-Grillet)의 소설 <질투>(La Jalousie)에 나오는 몇 몇 구절을 계획이나 목적 없이 띄엄띄엄 옮겨 보았다. “지금 기둥ㅡ지붕의 남서쪽 모서리를 받치고 있는 기둥ㅡ의 그림자는 기둥 밑에 맞닿은 테라스의 동위각을 정확히 반분하고 있다. 이 테라스는 지붕으로 덮인 넓은 회랑(回廊)의 형태로, 집을

노동과 병

설명하기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일을 그토록 하기 싫어했던 카프카(Franz Kafka)가 쓴 『변신』(Die Verwandlung)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는 한 개인이 지켜야 할 모든 사회적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고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 가족과 사회를 말도 못하게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병적이거나 초현실적 상황이 아니라면

아또넹 아르또

아르또(Antonin Artaud)는 자신의 “잔혹극”(Théâtre de la Cruauté) 이론에서 은유나 서정시가 가지는 근원적 신화의 이미지를 언급한다. 여기서 근원적 신화의 이미지란 감각과 기억의 덩어리, 즉 감각 속에 내재된 기억 또는 기억 속에 내재된 감각이다. 은유는 세계를 사유나 유추 또는 재현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마른 겨울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흔히 하디의 문학을 염세적이고 비관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시들을 보면 그러한 면이 강하다. 사실 그것은 하디만 그런 것이 아니라, 19세기 후반의 서구 현대인이 지배적으로 취한 정서였다. 산업, 과학, 사회, 계급,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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