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

기억의 두 수준

베르그송에 따르면 기억은 두 경향성으로 나뉜다. 즉 기억의 관점에서 나누어지는 시간의 두 수준이 존재한다. 하나는 현재 쪽으로 또는 가까운 미래 쪽으로 달려가는 경향이다. 이것은 생명체가 살기 위해 임박한 필요에 부응하는 것으로, 현재의 지각 대상을 신속히 인지하고 식별한다는 목적을 갖는다. 베르그송이

예술과 침묵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하찮은 기사들로 돈을 벌어 살아가는 어떤 신문과의 언쟁에서 얻은 교훈으로 현대성을 비판하는 논문을 쓴다. 그 중에서 현대인들의 무가치한 수다(talkativeness)의 원인들(매스컴은 그 선봉에 서 있다)을 지적하면서, 수다에 대립하는 침묵의 의미를 예술의 경우를 예를 들어 해설한다.   “예술작품을 지배하는 법칙이, 규모는

정동의 색조

정동(Affects)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이 될까? 우선 어둡고 칙칙한 색은 맞지 않을 것이다. 정동은 관계, 다양, 이행, 변화, 표면의 효과 같은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유동성이 느껴져야 하고, 어렴풋 하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시각적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어두운 색은 그 다양한

허구의 힘

베르그송은 사회가 생명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가 생명의 근저에 있다고 생각했다. 생명은 위계질서로 이루어진 분업의 체계이며, 이로써 개별적인 유기체는 사회적 유기성을 위해 계획되고 구축된다. 생명의 질서에서 개별 유기체들은 사회 전체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은 자연의 유기화

악마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한나 아렌트(Hanna Arendt)는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재판을 관찰하면서, “세상의 모든 잔혹한 일들을 모아 놓은 것 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우리의 도덕적 상상과는 달리 “그가 도착적이거나 가학적인 괴물(“푸른 수염의 사나이”)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라고 술회한다. 그는 이아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지식과 정당화: 최대 실행성에 의한 정당화

이 글은 료따르(Jean-François Lyotard)의 저작인 La Condition Postmoderne을 해석하면서 지식과 정당화의 문제에 관한 논의를 재구성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그의 논의를 따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보존하면서 다른 관점들과 결합하거나 다른 관점으로 나아갈 것이다. 1 과학 연구 조사의 메커니즘은 두 가지 면에서 커다란

지식과 정당화: 메타서사에 의한 정당화

이 글은 료따르(Jean-François Lyotard)의 저작인 La Condition Postmoderne을 해석하면서 지식과 정당화의 문제에 관한 논의를 재구성한 것이다.(주1) 한편에서는 그의 논의를 따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보존하면서 다른 관점들과 결합하거나 다른 관점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의 책 전체는 지식의 세 가지 정당화 방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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