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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과 소수자

스토리텔링 영화에서 스토리텔링 주체가 소수자(퀘벡 소수자, 흑인, 소외된 청년 등)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정동은 의식화되거나 특화된 형태로 국지화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몸의 가장 말단에서 일어나는 주변화된 비의식적 잠재태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인간적 능력에 있어 주변화의 극단에 있다고 할 수

공간의 민주화

한국 사회의 공간의 구도이다. 공간에 대한 법의 구도이기도 하고, 머리 속에 있는 관념의 구도이기도 하고,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계급의 구도이기도 하다. 불합리하고, 억지스러운. 이 구도는 거시적으로 한국의 국토 전체 뿐만 아니라 모든 공간(학교, 도서관, 회사, 공공기관 등)에서 미시적으로 뿌리깊게 설정되어,

그들은 왜 소통을 거부하고 벽이 되어가나?

사실상 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혼자서 살 수는 없다는 말이 맞다면, 어떤 식으로든 관계는 맺어질 것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는 대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조차도 주변의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하다못해 동물, 식물, 물건들과도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경우에 따라선

헤게모니

우월한 위상에 도달하기 위해 상대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외교관이나 정치가가 아니어도 사회적 동물의 기본적인 전술처럼 보인다. 손을 누가 먼저 내밀것인가, 언제 악수를 할 것인가, 머리를 얼마나 굽힐것인가, 앉은 자리의 높이를 얼마나 할것인가 등은 정치-외교가 목적인 만남에서는 매우 초보적이고도 기본적인

부작위

부작위(不作爲, Omission):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나 조처를 취하지 않는 소위 공무원의 소극적(negative) 태도라고 알려져 있다. 공무원 뿐 아니라 해야 할 의무나 책임을 진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기도 한다. 이것은 직무유기나 직무태만과는 다르다. 직무유기나 태만은 해야할 일을 명백히 하지 않는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상위 원리로서의 선(도덕)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고전적 정치관에서 벗어나 정치를 현실 내재적인 힘(fortuna)을 통해 사유함으로써 그것의 현대적 기념비를 세웠다. 예컨대,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군주는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지는 못할지언정 경외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경외심이란 두려움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궤도타기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에 정면으로 맞서거나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에는 힘의 한계가 느껴지거나 무모하다고 판단될 때 최선책은 무엇일까? 집채 만한 바위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아래는 ‘우리 자신들이’ 사는 집이 있다.  바위에 직접 맞서서 막을 힘이 현실적으로 없다. 깨부술 전략이나 도구도

습관에 관하여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라는 캐나다의 문화비평가가 쓴 책 <정동정치>(Politics of Affect)의 한 구절이다. 정동정치란 크게 두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정동 양태들의 지배와 식민화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정동적 조율을 통한 관계의 창조를 의미한다. 전자는 정동을 권력의 관점에서, 후자는 운동의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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