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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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노동이사제, 한국도 해보면 장점 알 것”… 유럽경총의 조언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것에 대해, 한 신문이 외국의 사례를 인터뷰 하여 노동이사제의 실상을 소개한 기사이다. 주로 스웨덴과 네덜란드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고, 그 내용은 노동이사제 도입이 지금은 어느 정도 정착되어 반대가 생각보다 많지 않고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취지이다. 노동이사제란 간단히 말해 노동자 중에서 이사의 일부를 선임함으로써 자본가나 전문경영자 뿐 아니라 노동자 역시 경영 결정권에 참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반대를 하는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 기사에서 단어 하나가 눈에 띈다. 스웨덴의 법률자문이 한국의 논란에 대해 짧게 내린 논평 안에 있는, “아기처럼”이라는 단어이다. 그는 노동이사제 도입 건을 두고 벌어진 의견분분, 정확히는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쪽을 이 단어로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이 논평을 맨 앞에 둠으로써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대신 전달하고 있다.

스웨덴 법률자문이 어떤 언어를 구사해서 저 단어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어를 썼을 것으로 추정하건대, “childish”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단어 선택은 이 사안에만 국한되어 특수하게 우연히 내뱉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아기처럼’은 ‘비유’가 아니라 ‘규정’, 즉 서구인이 한국(경제, 문화, 정치, 특히 언론 미디어 등)을 바라보는 “전반적 틀, 관점, 또는 격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틀이 난데 없이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생겨난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망설임 없는 언어구사는 일종의 “상투성”(banality)에 근간을 두고, 노동이사제를 둘러싼 논란(반대가 불러온)은 그의 상투성을 확인해주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상투적인 언어구사가 적절한 것인지는 달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반대”는 단지 어떤 실행에 대한 철없고 유치한 반응이 아니라 철저하게 이해(利害)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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