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씨네마톨로지⸥ : 증후비평과 창조적 소멸

⸢들뢰즈의 씨네마톨로지⸥ : 증후비평과 창조적 소멸

들뢰즈(Gilles Deleuze)의 두 권의 책 <씨네마>는 “이미지”를 존재론적으로 다룬 이미지-존재론이다. 이미지를 의식의 능동적 행태의 과정으로 파악했던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이미지론(<상상력>과 <상상계>)과는 대립하는 위치에서, 사르트르가 간과했던 틈새(영화!)로부터 또 다른 형식의 이미지론이 구성된 것이다. 들뢰즈에게 이미지는 의식 이전에 물질-운동-빛이라는 존재론적 근거 위에서 성립한다. 한편 <씨네마>는 영화 유파들과 편집 형식들을 체계적으로 암시하거나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본인은 영화사가 아니라고 했지만―일종의 영화사이다. <씨네마>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영화유파들의 편집방식에 대한 미학적 아포리즘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정도이다. 또 한편 <씨네마>는 기호학이다. 들뢰즈는 이미지들을 본성적으로 다른 경향(물질의 계열과 정신의 계열)에 따라 그 차이를 나누면서, 나뉜 이미지들에 꼬리표를 달아두었다. 그 꼬리표에 붙은 이름들은 대부분 퍼스(Charles Sanders Pierce)의 기호분류체계를 따라 진행된다. 이미지 그 자체의 수준에서 분류한 “특질기호”(qualisign), “공기호”(synsign), “법칙기호”(legisign), 이미지가 표상하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분류한 “아이콘”(icon), “지표”(indices), “상징”(symbol), 그리고 이미지가 해석자에 의해 표상되는 방식에서 분류한 “해석체”(rheme), “발화기호”(dicisign), “논항”(argument) 등이 그 예인데, 이 기호들은 들뢰즈가 분류하는 운동-물질-빛 이미지의 주관적 변용(지각, 정감, 행동, 추론, 관계, 시간 등)에 따라 대응하는 기호들로 명시된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관점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씨네마>는 무엇보다도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이미지론과 그 철학 전반―특히 <물질과 기억>에서 개진한―에 관한 예증적 주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이미지란 물질이며 정신, 즉 세계 자체이다. 마치 영화가 세계의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세계 그 자체인 것처럼 말이다. 독자들은 <씨네마>의 각 장마다 이 같은 베르그송의 테제들에 관한 논증을 접하게 되며, 논증된 명제들은 다시 영화 이미지를 통해 예시되는 과정이 반복되는 거대한 회로와 마주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르그송이 자신의 철학을 견지하면서 <창조적 진화>에서 그토록 비판했던 (운동의 허구적 재현으로서의)영화는 그의 철학을 가장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매체가 된다. 들뢰즈의 <씨네마>는 “베르그송주의”(Bergsonism)를 영화예술로 육화하는 하나의 프로젝트이다. 물질 이미지가 두뇌 안에서 주관화되면서 형성해가는 역량들의 본성상의 차이를 발견하는 문제, 그리고 그 방법으로서 직관적 나눔과 같은 베르그송주의의 테마들이 그 책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들뢰즈의 영화론 뿐만 아니라 문학-예술에 관한 그의 대부분의 텍스트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나눔의 방법을 “증후학적 비평”이라고 부른다―이것은 니체적인 용어이다. 물론 증후학은 의학의 한 분과이지만, 증후들(symptoms, signs)의 역동적 변화를 직관하고, 나아가 증후들의 복합으로서의 증후군을 그 본성적 차이에 따라 분류하는 실천적 메커니즘은 예술에 가깝다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증후학적 비평은 이미지와 존재의 “질적인 변화” 속에서 표현되는 실체를 읽어낸다. 즉 예술로서의 증후학 또는 증후학으로서의 예술이란 바로 존재의 표정과 뉘앙스를 관찰하고 파악하는 과정이다. 예컨대, 들뢰즈는 마조흐(Leopold von Sacher Masoch)의 소설에 관한 한 장대한 서문에서 정신분석이 새도-마조히즘이라는 용어로 두리뭉실하게 뒤섞어 놓았던 사드와 마조흐의 예술을 다양한 관점(언어, 스타일, 이상화, 도착, 본능 등)에서 그 본성상의 차이에 따라 나누었는데, 그것은 그들 각각의 표정과 뉘앙스를 긍정한 증후학적 비평의 좋은 예이다. <씨네마> 역시 이미지의 질적 변화, 즉 수많은 영화 유파들에 의해 배열되고 편집되는 방식에 따라 발생하는 이미지의 다양한 표정들 각각을 분류한다. 이로써 지각-이미지, 감정-이미지, 충동-이미지, 행동-이미지, 사유-이미지와 같은 주관성 고유의 각각의 역량들, 그리고 그들을 창조한 예술가들의 특이성이 그 이미지론 안에서 나누어지고 긍정되는 것이다.

필자의 책 <들뢰즈의 씨네마톨로지>(이하 <씨네마톨로지>)는 들뢰즈의 영화 이미지론을 이러한 증후학적 관점에서 독해하고, 거기서 핵심적인 몇 가지 개념들과 그 논리를 해설한 일종의 해설서이다. 이 책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들뢰즈가 개진한 이미지 개념의 성격과 이미지론의 철학사적 배경을 이론적으로 소개한 1, 2, 3장이 있다. 여기서는 이미지의 주관적 계열과 객관적 계열을 나누고, 이 두 계열의 관계를 철학적 유물론과 관념론, 그리고 후설과 베르그송을 위시하여 존재론적으로 대립되는 관점들을 다루고 있으며, 객관적 계열의 운동-이미지가 주관화되어가는 정신적 발생과정을 논증한다. 두 번째 부분은 이미지의 주관화 과정에서 생성되는 질적 차이를 영화사에서 회자되었던 여러 유파들의 작품들을 통해 예시하고, 나아가 이미지의 탈주관성(이미지의 소멸)을 논의한 4, 5, 6, 7, 8장이 있다. 여기서는 들뢰즈가 분류한 운동-이미지의 주관적 변용들(지각-이미지, 정감-이미지, 행동-이미지, 시간-이미지)을 새뮤얼 베켓(samuel Beckett)의 영화 뿐 아니라 네오-리얼리즘, 표현주의, 서정주의, 리얼리즘, 그리고 오즈 야스지로(Ozu Yasujiro) 등의 작품을 통해 구체화한다.

무엇보다도 <씨네마톨로지>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미지들의 질적 차이를 발견하고 그 역량들을 긍정하는 증후비평이 “잠재성”을 향한 운동이라는 점이다. 들뢰즈의 철학에서 잠재성은 과거이자 미래이며, 폐쇄적이고 가시적인 것 내부 또는 외부의 열림이다. 예술적 견지에서 잠재성이란 사물들이 자아내는 표정의 실질적 근거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가 질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에 따라 그것을 나누는 목적은 닫힌 공간 안에서의 우리의 욕망, 삶의 필요, 이해관계 때문에 편협하게 얼버무리고 추려낸 가시적인 이미지의 이면―이전과 이후―에 있는 잠재성을 읽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미지의 본성적 차이의 나눔이란 사물의 표정에 대한 긍정을 넘어 시간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씨네마톨로지>는 여러 영화감독들과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소멸화” 운동을 제시한다. 예컨대, 표현주의와 서정주의의 정동화 편집, 하워드 혹스(Howard Hawks)나 네오웨스턴의 탈유기적 편집, 네오리얼리즘의 반주관적 편집이나 진공화, 오즈의 탈공간화 등, 본성적 차이로서의 표정과 시간을 동질화된 사물로 가두는 육체와 공간을 식별 불가능한 지점에 이를 때까지 이미지를 나누고 빈 공간을 만들고 가시적인 모든 것을 지워나감으로써 그 표정과 시간을 해방시키는 과정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씨네마톨로지>를 “창조적 소멸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2012년 하반기에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문>에 게재되었던 책 소개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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