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도시

타인과 도시

싸르트르(Jean-Paul Sartre)의 희곡 『닫힌 문』(Huis Clos)에 등장하는 가르생(Garcin)은 이렇게 말한다: “지옥, 그것은 바로 타자이다!”
글쎄ㅡ지옥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트레스인 것만은 사실이다. 옆에서 공간을 차지하고 숨을 쉬고 있는것 만으로도 타인은 나를 가두는 벽이되고 내 존재를 규정하는 감옥이 된다. 베켓(Samuel Beckett)의 작품들은 이들 벽과 감옥으로부터, 심지어 말 자체에 내재한 타자성으로부터의 탈주선을 그린다. 마치 창살 앞에서 왼쪽과 오른쪽으로 어슬렁거리는 늑대처럼 웅얼웅얼거리듯. 카프카(Franz Kafka)는 이 벽 속에 갇힌 자신의 몸을 한 줄기의 선율로 바꾸어 높게 매달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거슬러 오른다. 이들은 모두가 갇힌자들의 음성을 소유했다. 현대인들의 기억력 감퇴와 주변에 대한 무관심(그 시끄러운 대로변 카페에서의 독서라니!)도 결국은 타자를 견디기 위한 일종의 자기 거세일 것이다.
현대인의 역설ㅡ타인이 지나치게 가까이 있다보니 더욱 더 낯설고 멀어진다.
장 그르니에(Jean Grenier)가 낯선 대도시를 묘사하면서 발견했던 행복감 역시 이와 유사한 역설에 기인한다. 대도시가 마치 비밀스런 자유를 허락하거나 호젓한 휴가를 보장해줄 피서지라도 된다는 듯이.
타자로부터의 소외, 고립, 폐쇄는 오히려 우리에게 안정감을 준다. 쉬고 싶은 자들이 갈 곳은 땀과 열기가 부글거리며 무언가가 쉴새 없이 우리의 몸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시골이나 섬이 아니다. 그들이 가야할 곳은 차갑고 고요한 대도시이다. 예컨대, 피서지란 대도시의 연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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