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의 색조

정동의 색조

정동(Affects)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이 될까? 우선 어둡고 칙칙한 색은 맞지 않을 것이다. 정동은 관계, 다양, 이행, 변화, 표면의 효과 같은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유동성이 느껴져야 하고, 어렴풋 하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시각적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어두운 색은 그 다양한 관계를 표현하기엔 너무 무겁고, 우중충하고, 배타적으로 보인다. 정동은 모든 색을 무차별로 만들어 가두어 버리거나 밖으로 내쫓아 버리는 그런 종류의 상투적인 잠재성이 아니다. 정동은 무의식도 아니다. 정동이 시간 속에 적재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식 표면으로 떠오르지 못해, 또는 떠오르기 위해 어두운 지대에 웅크리고 있는 원한감정이 깃들어 있는 프로이트 식의 잠재성이 아니다. 정동은 물질의 어두움(괴테가 말한 검녹색 같은)과도 관계가 없다. 물질에는 물론 원한감정은 없지만 수동적이고 차갑고, 무엇보다도 그것이 생명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정동을 필요로 한다. 물질과 관련하여 정동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회색 쯤 될 것이다. 물론 그냥 회색이 아닌 붉은 기운이 감도는 그러나 밝은 회색. 정동은 관계의 다양성을 실현하는 색 이어야 하기 때문에 밝아야 한다. 물론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편견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회색조도 좋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정동은 다채롭고 밝다.

정동적 잠재성을 가장 잘 표현한 색과 디자인을 고르라면 Bruce Mau가 디자인 한 Bergsonism 영어판 표지일 것이다. Zone Book에서 출간된 책인데, 편집자가 내용 뿐 아니라 표지 조차도 진부한 해석과 아둔한 발상으로 경솔하게 덤비지 않고, 책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그의 손을 거치도록 정성을 다했다는 인상이 든다.


Bruce Mau는 캐나다인이고, 그래픽 디자인으로 유명하고, 환경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건축이나 산업 디자인, 심지어 디자인 철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폭을 가진 디자이너이다. 이 표지에는 생명이 있고, 기억이 있고, 정동적 잠재성이 살아 있으며, 관계들의 다양이 존재한다. 붉은 기운이 없어 다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발랄하고, 생기가 넘치며, 우울이나 반감이나 적개심 같은 것을 모르는, 그야말로 심층 없는 순진무구의 표면이 존재한다. 정동과 잠재성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Bergsonism에 대한 Bruce Mau의 아름다운 시각적 논평이라 할 만한 디자인이다.

정동의 색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