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으로서의 보수와 진보

생존으로서의 보수와 진보

“보수”(保守)란 기본적으로 변화 즉 “새로운 것”, “다른 것”에 대한 거부이다. 보수는 생명체가 습관에 의존하는 생존전략이다. 모든 염소들은 자신이 지금 행복하게 뜯고 있는 이 풀밭이 내일도 여전히 자신을 위해 존재하길 바란다. 어떤 생명체든 생존을 위해서는 보수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보수는 생존을 위협한다. 풀밭이 항상 푸른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자연은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달라져가는 자연 속의 일부일 뿐이다. 몸도 달라져가고, 생각도 달라져가고, 감정도 달라진다. 따라서 변화를 수용하는 능력은 생명체가 보수적인 전략을 사용하는 것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그의 생존에 있어 본질적인 전략으로 작용한다. 화이트헤드(A. N. Whitehead)는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의 몸과 정신을 재빠르게 변할 줄 아는 능력을 “창조적 정신상태”(creative mentality)의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했다. 사실 진보란 인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의 문제, 과학의 문제, 생존의 문제이다. 건강한 신체란 무엇인가? 무균질의 살균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일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진화의 들끓는 과정 속에서 도태되었나? 또한 순수성에 집착하느라 배타적이 된 얼마나 많은 역사적 주체들이 몰락의 길을 재촉했나? 질병이 뭔가? 새로움에 대한 면역기능 또는 열림의 실패 아닌가? 보수적 생존전략은 본질적으로 “편협”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것은 필연적으로 병적인 나약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 윤리적 편협은 단순히 정신 상태의 문제만이 아니라 틀림없이 신체적 상태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 습관을 필요로 하는 우리는 바로 그 생존을 위해 더욱 더 치열하게 습관의 환상으로 병들어가는 보수와 싸워야 한다. 보수와의 모든 싸움은 편협과의 싸움이며, 그 승패 여부는 한 생명체 그리고 한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게 지속 가능한가를 결정짓는 근본적 요소다.

p.s.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국사회는 누가 진보이고 누가 보수인지 명확히 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떤 점에서는 보수가 진보적이고, 어떤 점에서는 진보가 보수적이고, 보수적 진보가 있는가 하면, 진보적 보수가 있기도 하고, 진보의 가면을 쓴 보수에서 보수의 가면을 쓴 진보로, 진보에서 보수로, 보수에서 진보로, 진보적 보수의 가면을 쓴 진보, 진보적 보수의 가면을 쓴 보수, 보수적 진보의 가면을 쓴 진보, 보수적 진보의 가면을 쓴 보수, 진보가 아닌 진보, 보수가 아닌 보수, 보수 같은 진보, 진보 같은 보수, . . . 정치적 크리스탈 이미지가 펼쳐진다.

생존으로서의 보수와 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