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과 시간

모순과 시간

다음과 같은 진술을 생각해보자. “엘리스는 자신이 흘린 눈물 바다에 빠져 허우적 거린다.”

이 모순(contradiction)을 어떻게 해결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엘리스는 약을 먹고 작아졌다.”

엘리스가 ‘작아졌다'(becoming shorter)는 시간 관념이 개입됨으로써, 하나의 동일한 평면(진술) 위에서 서로 양립할 수 없었던 두 사태(엘리스는 눈물에 빠지기에는 너무 크다 / 엘리스는 눈물에 빠져 허우적 거린다)가 변화와 생성의 과정을 거쳐 이질성의 공존이 가능해 진다. 본성적으로 다른 두 상황 또는 종류가 다른 두 항이 시간 속에서 이질적으로 접합된 것이다. 역설(paradox)은 대립하는 모순이 시간을 통해 이질적 접합이 가능하다는 사실, 즉 생성에 대한 통찰이다.

예컨대, 기독교적 역설을 생각해보자.

“나를 버리는 것이 구원이다.”

이 역설에는 “나”의 존재가 “버림”과 “구원”의 대립에서 동일성으로 이행하는 변화 속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대립하는 모순이 ‘거짓’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일, 즉 ‘참’임을 알게 된다.

시간은 생성과 변화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부수고 마모시킨다. 시간은 우리가 확고하게 믿고 있는 참된 가치와 진리 조차도 해체한다. 시간이란 거대한 형식의 거짓의 생산이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시간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순과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