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렉트씨네마와 씨네마-베리테

다이렉트씨네마와 씨네마-베리테

미국에서 60년대에 유행했던 다이렉트시네마(direct cinema)는 알버트 메이슬(Albert Maysles), 데이비드 메이슬(David Maysles), 프레데릭 와이즈만(Frederick Wisemann)이 중심이 되어 창안한 다큐멘터리 장르이다. 다이렉트시네마는 묘사와 담론 보다는 현실 자체에 주목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사건의 생생함을 방해하지 않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직접적인 이미지를 포착하려는 시도로 요약된다. 인위적인 조명이나 부수적인 촬영장비도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등장인물과 실제의 개인이 구분되지 않으며, 영화와 삶의 동일성을 추구한다. 다이렉트시네마 감독은 영화적 사건을 기다리지만 그 사건에 개입은 하지 않고 관찰자 역할만 한다. 그러는 가운데 사건의 관찰에서 드러나는 삶의 진실을 추구한다. 예컨대 메이슬 형제의 <세일즈맨>(Salesman)은 세일즈맨들의 활동에 대한 단순한 추적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행적으로부터 미국의 정치사회적 실상을 읽게 된다. 마찬가지로 와이즈만의 <정신병동>(Hospital)에서 우리는 환자들의 객관적 일상을 포착한 현재적 이미지 속에 잠재하는 실상 전체를 읽게된다. 실제 사건을 현장에서 기록하고 그 내부를 디테일하게 관찰함으로써 사건의 직접성에 도달하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테크놀로지의 발전―동시녹음이 가능한 16미리 이동카메라, 사운드 등―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단순히 외부의 기록이나 내부의 세밀한 관찰에 머무르지 않고 감독의 담론적 가치를 담으려는 시도들로 변화한다. 즉 세계는 해석되어야 할 어떠한 관점이라는 견해가 일부 도입된 것이다. 민속학자인 장 루쉬(Jean Rouch)가 창안한 시네마-베리테(cinéma-vérité)는 다이렉트시네마와 마찬가지로 현실의 직접성을 추구했지만, 단지 사건을 기다리며 관찰하는 태도에 머물지 않고 인위적으로 사건이나 상황을 유발시키고 그 과정을 통해 삶의 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플레허티(Robert Flaherty)의 영향을 받아 ‘참여하는 카메라’(participating camera)를 옹호하였다. 여기서 카메라는 현장 안으로 들어가 제작자와 촬영 대상 간의 언어나 문화의 간극을 극복하는 적극적인 수단이 된다. 시네마-베리테는 카메라의 존재를 감추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은 카메라를 느낄 수가 있었고, 촬영되는 배우도 카메라를 의식 했으며, 심지어는 연출자가 화면에 등장해 스스로 서술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카메라가 배제된 몰래 카메라를 통한 접근은 금지되고, 촬영에 참여한 배우들에게도 진행 상황이 알려져야 했다. 참여하는 카메라는 이미지 자료에 대한 상호간의 피드백을 통해 교정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물론 카메라의 개입은 종전의 다큐멘터리가 종종 범했던 담론의 정치화나 이데올로기의 선전기능과는 무관한 것이어야 했다. 오히려 루쉬는 프로파간다(propaganda)로서의 다큐멘터리의 기능을 비판하는 쪽이었다. 시네마-베리테의 감독은 냉소적인 관찰자나 독단적인 화자가 아니라 대상과의 소통을 통해 타자의 문화에 대한 통찰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론은 프로파간다나 관찰만으로는 직접성에 도달할 수 없으며, 촬영자와 대상이 내적인 긴밀함을 함께 겪으면서 형성된 직접성만이 진실하다는 것이다. 시네마-베리테는 촬영을 하는 영화적 상황 외부에 있는 관념적이고 보편타당한 진실의 표현이 아니라 상황 내부로 들어간 카메라의 개입으로 인해 촉발된 영화적 진실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모순을 인정하면서 세계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시네마-베리테는 이후 고다르나 트뤼포 같은 누벨바그(nouvelle vague) 감독들, 그리고 자끄 리베트(Jacques Rivett),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 존 카사베츠(John Cassavetes), 피에르 페로(Pierre Perrault) 같은 감독들의 실험적인 영화들 속에서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합되는 형식으로, 서로 교차해서 나오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안에 픽션이 삽입되거나 반대로 픽션 안에 다큐멘터리가 삽입되어 구현되었다.

어떤 점에서 시네마-베리테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반성적 다큐멘터리라고 말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란 확고한 중심을 가지는 관찰자나 발화자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스크린을 통해 전개되는 이미지는 현장 내부의 특정 위치에 있는 주체의 시선과 관념의 매개를 거친 산물이라는 조건을 벗어날 수 없다. 다큐멘터리를 둘러싼 이러한 모순적 조건에 대한 반성은 다큐멘터리즘의 초월적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론적 회의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반성적 다큐멘터리에서는 있는 그대로, 날것 그대로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관객의 환상에 균열을 내고, 그 환상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감독은 자신의 세계관을 의도적으로 이미지에 외삽하거나 이미지의 자연적 지각 조건을 왜곡한다. 서사적 전개에 갑자기 인터뷰를 삽입한다든가, 인칭을 고정시키지 않고 다양한 관점들을 통해 표현 양식들을 혼합한다든가, 발화자의 위치를 다변화하는 방식의 주체성의 탈중심화 또는 복잡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반성적 다큐멘터리의 진화를 통해 우리는 진실이란 미리 주어진 대상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진실은 발견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의 문제이며, 구성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 글은 <영화증후론>(Cinematology)의 일부를 발췌함

 

다이렉트씨네마와 씨네마-베리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