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U-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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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affects)에 관한 관심과 통찰은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인데, 마수미(Brian Massumi)의 정동에 관한 에세이를 읽다보면 묵시론적이고 니힐리즘적인 취향이 느껴진다. 그래서 다소 허기가 진다. 그러나 긍정을 위한 비판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볼 가치가 있는 비평가이다.

“매일 일어나는 상호주관적 세계에서는 물론 다수의 시야 축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유사성과 자기-동일성에 종속되어 하나의 단일한 선을 따라 배열된다. 이 선은 그 자체로는 비시각적(nonvisual)이다. 그것은 일종의 서사선(a narrative line)이다. 가족 관계 혹은 직장에서, 우리는 할당된 사회적 역할을 연기한다. 우리는 그 대본을 해석하고, 우리 자신이 된다는 것 즉 부모나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 고용주와 고용자, 경찰과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하나의 “마음의 그림”을 시각적으로 소묘하고 형태를 만든다. 그리고 우리와는 다르지만 보완적인 인물 역에 종사하는 타인들을 위해 그 가시화된 그림을 육화한다. 그 각각의 역할을 연기하는 가운데, 어떤 특별한 타인이 우리를 알아봐주면, 그에 따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식한다. 우리를 받쳐주는 조연배우의 눈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반영하고, 그들 역시 우리의 눈 속에 있다. 상호간의 차이는 한 쌍으로 된 두 눈의 망막 표면들 사이에서 펼쳐진다. 일련의 조절된 식역(識閾)을 가로질러 그 두 사회적 연기자들을 실어 나르는 하나의 서사선이 그 표면들 사이로 지나간다. 동일한 서사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어서, 우리는 서로 차이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서로가 닮아있다. 나 자신과 나의 반영적 보완자 간의 차이는 움직임을 허용하는 최소한의 차이이다. 시야 축은 약간 비틀린 각을 이루어, 상호간에 자기-규정적 인지는 항상 미세하게 빗나간다. 이와 같은 원근법적 이접(perspectival disjunction)은 융합을 예방할 정도로 불균형을 창출한다. 정지 상태로부터 구제되었기 때문에,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최소한의 변화, 즉 동일성과 대체로 일치되는 비대칭-유발의 역동적 왜곡만이 있다. 우리는 성장을 한다. 나이가 들어, 심지어 어떤 역할들이 뒤바뀌어, 어쩌면 부모가 되어, 어쨌든 유년기를 다 써버리고 성인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든 육신이 아무리 뒤틀리고, 정신이 아무리 집중력을 잃어간다 해도, 우리 자신 이상으로 더 자랄 수는 없다. 특별한 순간들은 눈에 띄게 뚜렷이 나타나, 가족사진 앨범 속에 완벽한 그림이 된다: 생일, 졸업, 결혼, 기념일, 승진축하, 퇴직 등. 평범하고, 늙은, 일상 속의 우리는 형식화된 포즈들로 사진에 찍혀 보존되어 삶의 구절들의 연속을 통해 나아간다. 우리의 삶은 연속으로 이어지는 타블로에 담겨, 즉 체계적으로 그러나 조용하게 과녁을 빗나가는 형편없이 진부한 대본에 구두점을 찍는 연속 샷에 담겨 우리의 눈 앞을 지나간다. 연속적인 진행은 있지만 진정한 변형, 즉 감지하기 어려운 운동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거기엔 우리가 다시 등장한다. 우리 자신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죽는다. [이것이 현대-스타일의 유토피아이다].”(Brian Massumi, Parables for the virtual: Movement, Affect, Sensation, Durham &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02. pp. 232-233) ([ ]표시는 역자가 넣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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