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회귀

영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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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Emile Zola)를 위시하여 자연주의 작가들에 대한 위스망스(Joris-Carl Huysmans)의 비판은 그들이 병든반복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물질주의적 중언부언은 세계를 제자리 걸음으로, 더 정확히는 “고정된 원 위에서 맷돌을 돌려 대느라 숨을 몰아쉬며” 허덕이는 퇴락의 반복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위스망스는 그들과 거리를 두고 물질의 지대를 넘어서는 순수 잠재성의 지대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서문을 20년 후에 새로 쓰면서 병든반복을 넘어서는 영원회귀의 섬광이 될 만한 통찰을 다음과 같이 간략히 적는다.

“실상 자신이 쓴 문장들을 몇 년이 지난 후에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실망스럽고 괴로운 일도 없다. 문장들은 이를테면 침전물이 생기면서 맑아지고 책 깊숙히 찌꺼기들을 가라앉힌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책이란 나이를 먹으면서 맛이 좋아지는 포도주 같지는 않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일단 맑아진 후, 각각의 장들은 김빠진 술처럼 맛을 잃어버리고 그 향기는 시들고 마는 것이다.”(조리스-카를 위스망스, <거꾸로>(문학과지성사, 1993), p. 9.)

퇴락의 반복이 초래하는 권태와 공허 뒤에는 또 다른 심오한 반복이 있다.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는 동일한 반복의 두 계열을 구분한다: 과거로 가는 반복, 그리고 미래를 향한 신념과 확신의 반복. 우리의 목적은 글과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표식 같은것에 불과하다. 심오함은 글과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 영원회귀가 일어나는 다른 지대 속에 있다. 물론 추억을 더듬듯이 과거를 향해 그 표식으로 되돌아 오지만, 표식 아래에 쌓여있는 침전물의 부정적 결과인 권태와 공허는 다른 반복을 가능케 하는 토양이 된다. 이전의 표식이 따분할 만큼 우리는 커져있고, 증식하고 있으며, 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글을 써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던 “부조리의 힘”이란 바로 “역설을 가능케하는 시간”일 것이다. 역설만이 우리를 진리의 격자들로부터 빠져나가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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