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

표현주의

회화에서 “표현주의”(Expressionism)는 “뜨거움” 또는 “강렬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물의 질적 변형이나 용질(溶質)의 추출을 위해서는 용광로와 같은 뜨거운 환경이 필요하다. 창백한 물질의 색에 가까운 초록이 야수적 파토스의 환경이 되거나(H. Martis), 여인의 몽상적인 눈이 급진적인 거부와 물신주의적 환영에 사로잡혀 있거나(G. Klimt), 불안과 절망이 신체 밖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빠져나와 대기 전체에 파동을 일으키거나(E. Munch), 히스테리적인 선 위에 일고 있는 도발(E. Schiele) 등이 좋은 예라 할 것이다. 표현주의가 주로 (신체의)구멍과 관계하는 것은 단단한 것을 비집고 솟구쳐야할 출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그란 눈이나 벌어진 입(뭉크), 환타지에 취해 버린 눈(크림트), 치켜 뜬 시선 그리고 발기되어 치솟아 있거나 빨갛게 벌어진 성기(쉴레). 이는 예술적 표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하나의 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하려면 우선 뜨거워져야 한다. 정치적 역사적 테마들과 연관이 있는 예술 이론은 대체로 이러한 질문에 닿아 있다: 어떻게 하면 뜨겁게 달굴 것인가? 무엇이 가장 뜨거워질 수 있는가? 예컨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역사에서 형식주의가 비판을 받았던 것은 그들의 이론이 자칫 세계를 냉각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베르토프(Dziga Vertov)가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서 보여주었던 “카메라-눈”(Kino-eye) 이론에 대해,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tein)은 그것이 발전이 완성된 사회에서나 가능한 방식이며 형식주의적 유희(광대짓)라고 비판하였는데, 바로 저와 같은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그가 원했던 것은 물질과 동일한 혹은 물질 안에 내재하는 차가운 눈이 아니라, 주먹이나 분노 혹은 외침과 같은 것이었으며, 단단한 것들을 거대한 우주적 소용돌이 속으로 녹이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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