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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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항상 나를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내 독서방식은 이러한 강박과는 맞지 않다. 오히려 방해가 된다. 책을 읽으며 내가 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 열심히 두 서너줄을 읽는다. 그러다가 눈을 책에서 떼어내어 천장이나 창문밖이나 먼 곳을 향한다. 그러고는 방금 읽은 대목에 자극을 받아 그와 연관된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그 대목과는 무관한 다른 생각을 하거나, 어떤 사람을 생각하거나, . . . 그렇게 산만한 정신상태가 되어 책을 보다가 하늘을 보다가, 책을 보다가 창밖을 보다가 한다. 지금 나는 존 버거(John Berger)의 Ways of Seeing이라는 책을 읽다가, 그 책에 있는 어떤 그림(Frans Hals의 그림)을 유심히 본다. 그림에 배경으로 그려진 푸르스름한 저녁 풍경을 한참 보다가, 내가 알았던 아주 먼 동네로 시선을 옮긴다. 그러고는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마을을 떠올리다가, 그와는 전혀 다른 유럽의 어떤 농촌마을을 상상한다. 푸르스름한 풍경이 점점 짙어져 산과 숲과 나무만이 희미하게 그림자만 보이는 저녁 한 복판에 집 몇 채가 듬성듬성 서있고, 집들의 창에서는 누런 불빛이 새어 나온다. 안에서는 아마도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말없이 앉아 한적한 촛불 아래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잠이 쏟아지기를 무료하게 기다리는 중일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새 그 풍경을 글로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나는 이 장면을 소설을 쓴다면 이렇게 써야할 것이라며 혼자 마음 속으로 되뇌인다. “그 저녁을 화가가 그린다면, 틀림없이 짙은 회색 아니면 진한 청색이 될 것이다. 산 너머 멀리에서나 어렴풋이 광채가 희미하게 있을 뿐, 어디에도 빛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그 푸른 대기 속에서도 사물들은 보이고, 빛은 엷게 퍼져있었다….”라며 중얼중얼 거린다. 그러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흥분감에 도취되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그렇게 나의 독서는 책 속의 글자들과 아련한 이미지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안개처럼 서서히 퍼진다. 결국 많이 읽겠다는 야심은 점차 꺼져버리고, 독서는 상상이나 공상과 뒤섞여 구분이 안 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역시 독서의 끝은 잠인가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