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추는 파편들

춤을 추는 파편들

세계가 파편들로 분할되었거나, 최소한 그 파편들의 집합이라는 생각은 최근에 와서야 고안해 낸 지적 발명이다. 예컨대, 유럽에서 헤겔의 시대만 하더라도 세계는 하나의 논리적 질서로 설명이 가능한 부드러운 직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듯이 보이는 변증법도 실은 따지고 보면 클라이막스들로 이루어진 상상적 연쇄의 세계, 즉 아주 부드럽고 연속적인 세계를 전제한다. 현대에 이르러, 그러니까 인간이 세계를 수의 집합으로 계산하게 됨으로써, 순수하게 물질적인 수준의 “플랑크의 세계”가 펼쳐진다. 세계는 무수한 점들의 집합, 혹은 알갱이들의 순열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라이프니츠와 뉴턴의 미적분의 세계, 케플러의 우주(궤도와 그것을 주파하기 위한 시간의 관계), 갈리레오의 공간(낙하 운동과 공간의 연결), 데카르트의 좌표와 불특정한 순간(평곡선 방정식), 아인슈타인의 시간(공간의 또 다른 차원으로서), 모두가 하나의 테제를 전제한다: 세계는 불특정한 그러나 등간격의 파편들로 부서질 수 있으며, 반대로 다시 모일 수 있다. 마치 산을 헤아리기 위해 무수한 작은 돌멩이들로 쪼개어 놓은 것처럼, 세계는 자잘한 파편들로 흩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 같은 사람은 재미있게도 세상이 덜그럭 덜그럭 소리가 난다고 비유한다. 예컨대 우리는 컴퓨터의 키보드를 누르며 글을 쓰는데, 이 유연하고 부드럽고 연속적인 서사로서의 글은 실은 컴퓨터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디지털 신호들의 단순한 숫자들의 단속적인 덜그럭거림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다. 우리가 창조한 세계는 이렇게 무뚝뚝하고 툴툴거리며 요란한 소음으로 가득한 무미건조한 사물들의 불연속적 콜렉션이다.

그러나 또 다른 파편들, 아주 유연하고, 자유로우며, 부드러운 파편들이 있다. 이 파편들은 수와 양이 덜그럭거리며 억지스럽게 잇고 있는, 단지 일시적으로 선이 그러졌을 뿐인 사이비 파편이 아니다. 진정한 파편은 덜그럭 거리기 보다는 너울거린다. 혹은 빨려들어간다. 자그마한 미소, 눈짓, 가늘게 스며드는 햇살, 한 순간의 이미지, 색조, 저녁 무렵의 붉은 빛, 자그마한 시간들, . . . 이러한 질적 파편들 속에서 우리는 덜그럭 거리기 보다는 그것들에 실려 춤을 춘다.

 

춤을 추는 파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