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mentatio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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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스와 브레송. 그러니까 불특정 공간과 정동의 이미지 관련 편집이 끝났다.

브레송의 경우가 좀 특별한데, 간단히 요지만 추려서 요약하면 이렇다.

그의 화면은 상반신, 다리, 손 들로 분할되어 제시된다. 그는 공간과 사물을 전체로 보여주지 않는다. <잔다르크의 재판>에서 감옥과 법정, <돈>에서 이본의 감옥과 법정 등은 그 전체가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이본이 노인 가족을 죽일 때에도 그의 표정조차 보여주지 않고, 손, 발, 도끼, 개의 움직임에 따라 나오는 바닥에 널부러진 시체들을 보여줄 뿐이다. <호수의 랑슬로>에서도 숲 속에서의 전쟁은 말이 지나가면서 보이는 시체들만 나올 뿐이다. 이 답답한 편집방식을 통해 관객은 폐쇄된 공간을 다시 재구성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브레송에게 있어 “추상”은 마치 새로운 “구체성”을 만드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 고유한 관계를 떼어내고 부서진 파편들을 다시 연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의 특징적인 분할기법 편집은 그가 한 이 말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재현에 빠지지 않으려면 . . . 인간과 사물들이 어떻게 서로 분할되어 있는지를 보라. 그리고 그들을 서로 고립시켜라. 그들을 독립관계로 만드는 것은 새로운 종속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Robert Bresson, Notes sur le Cinématographe, Paris, Ed. Gallimard, pp. 96-96.)

중요한 것은 이렇게 절단된 신체, 공간, 사물들의 닫힌 공간을 재구성하는 퍼즐은 사물들 사이에 실제적인 연결이 아닌 “내적 관계”, 즉 잠재적 연접(the virtual conjunction)을 창출하려는 목적이다.

가령, 한 벌의 정장 수트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기호학에서는 세계를 이러한 계열체들의 집합 혹은 통합체라고 본다. 정해진 짝을 찾아, 결정된 길을 따라 배열이 되어 있는 것이다. 특정 하의와 특정 상의는 항상 같이 등장한다. 이 둘은 서로 지시 기능적(referential function)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하의를 세탁소에 보냈다. 상의만 댕그러니 남아 있다. 이제 이 상의를 다른 하의와 묶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그 동안 이 상의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새로운 실재, 새로운 실체(entity)가 현시되어야 한다. 이전에는 항상 그렇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하의와 도식적이고 자동적인 지시 관계를 가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는 상의의 색, 디자인, 특성, 옷감의 질 등, 다른 하의와 맞춤이 되기 위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실재성, 즉 표현적 실체가 드러나야 한다. 몸에 붙어있던 얼굴이 갑자기 클로즈업에 의해 독단적 이미지가 되어 그 정동적 실체가 드러나듯이, 이제 상의는 새로운 배열과 배치를 위해, 새로운 종속관계를 가지기 위해 . . .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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