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영화에서의 자유간접 주관성

현대영화에서의 자유간접 주관성

“[현대영화에서는] 이제는 더 이상 내적 독백이 보증했던 작가와 인물 그리고 세계의 통일성[동일한 배음, 기표적 통일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가 자신과는 다른, 혹은 자신이 고정시킨 역할과는 다른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물들의 중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거나, 혹은 인물이 마치 제3자를 통해 자신의 행동과 말이 이미 얘기된 것처럼 행동하고 말함으로써 서로에서 서로로 이행하는 ‘자유간접화법’ 혹은 ‘자유간접적 시각’이 형성된다. 위의 첫번째 경우가 바로 루쉬와 페로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소위 부적절하게도 ‘다이렉트’라 불리는 영화에 해당되며, 브레송과 로메르에게서 볼 수 있는 무조적 영화는 그 두번째 경우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현대영화란 내적 독백의 단일성이 붕괴되고 그 것이 다양성, 형태의 왜곡, 자유간접화법의 이타성으로 대체되는 영역의 이동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파졸리니가 말할 때, 파졸리니는 현대영화에 대한 심오한 직관력을 갖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358) 

또는 다른 곳에서 서사와 관련하여,

“영화는 서사적이기를 그쳤지만, 그러나 고다르와 함께 영화는 가장 ‘소설적인 것’이 되었다. <미치광이 피에로>가 말하듯 ‘다음 장, 절망, 다음 장, 자유, 쓰라림’과 같은, 바흐친은 서사시 혹은 비극과는 달리 소설이란 더 이상 인물들이 여전히 단일하고 동일한 언어를 통해 얘기하는 집단적 혹은 분배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정의한다. 그와는 반대로 소설은 때로 익명적인 일상언어, 혹은 때로는 한 계급, 한 집단, 한 직업 언어, 또 때로는 인물의 특유한 언어를 필연적으로 차용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인물, 계급, 성은 작가의 자유간접화법을 형성하고, 마찬가지로 작가는 그들의 자유간접적인 시각(그들이 바라보는 것, 그들이 아는 것 혹은 알지 못하는 것)을 형성한다. 혹은 오히려 인물들은 작가의 시각-담론 속에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작가는 인물의 시각-담론 속에서 간접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 소설과 그것의 ‘복수언어주의(plurilinquisme)’, 담론 그리고 비전을 구성하는 것은, 익명적이건 그렇지 않건, 장르 내에서의 반성이다. 고다르는 영화에 바로 이러한 소설의 고유한 역량들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끊임없이 나는 타자가 되는 중재자로서의 반성적 인물들을 제공한다. 작가와 인물 그리고 세계를 결합하면서 그들 사이를 통과해가는 것은 이제 단절된 선,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선이다. 바로 이러한 세 가지 관점으로부터 현대영화는 사유와의 새로운 관계를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미지들 사이에 개입하는 바깥의 힘을 위한, 전체 혹은 이미지의 총체화의 소멸. 자유간접화법과 시각을 위한, 영화의 전체로서의 내적 독백의 소멸. 우리에게 여기 이 세계에 대한 믿음만을 남겨놓은 단절을 위한, 세계와 인간의 통일성의 소멸.”(364) [ ]표시는 나의 주석. (자유간접주관성 관련 내용에 삽입 편집할 것)

현대영화에서의 자유간접 주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