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우정

친구는 눈을 감아주는 사람이다. 그는 결점과 오류들을 이해해 준다. 친구는 내가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나의 실상을 들추어내거나 따져 묻지 않는다. 그는 나를 덮어주고, 망을 보아주고, 곁에서 시름과 고통의 위안이 되어주며,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우정은 사랑처럼 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을 싫어하지만, 사랑의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 위안을 받기 위해 찾아가는 환상의 귀의처이다. 우정은 우리를 고립되지 않게, 고독감을 떨쳐버리게, 대면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가장 무시무시한 상태와 맞닥뜨리지 않아도 세상 사는데 별 문제가 없음을 일깨워주고, 우리를 사회적 일원이게 해준다. 사회 속에서, 사회인으로서, 섬이 되지 않고,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정은 고립과 외로움을 편안한 관용으로 덮어준다. 그러나 이렇게 사이좋은 우정과 조화로운 통일로 형성된 진실이 효력이 있을까? 내 무능력을 치유하고 위로해주는 친구의 칭찬 한마디가 절망과 화를 삵여줄까? 그의 위로가 실연을 잊게 해줄까? 그와 합의한 진실로 우리가 더 왜소해진 것은 아닐까? 혹시 우정과 합의의 진리가 외면은 아닐까? 과연 우리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맨 몸으로 나가야할 시간–베르그송(Henri Bergson)이 “직관의 비판능력”이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의 신 “다이몬”(daimōn)이 귓가에 속삭이며, 우리를 “아포리아”(aporia)의 미궁속으로 밀어 넣는 무시무시한 시간–을 피할 수 있을까? 실재는 난입한다. 난입하여 지성을 강요하고, 오류를 질책하고, 굳은 몸체들을 대기 속으로 흩뿌린다. 그 시간 안에서는 친구도 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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