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 Hughes의 조언

Ted Hughes의 조언

냉소의 시대를 지나 니힐리즘의 시대로 치닫고 있는 현대를 치명적인 비극에 이르게 하는 것은 전쟁이나 종교적 갈등이 아니라 냉소와 권태이다. 신이 죽고 인간에게 남은 것은 해방이 아니라 침묵 뿐이며, 설사 신이 살아있다 해도 그 신의 침묵 속에서 인간은 마비와 퇴화의 형태로 소멸해 간다. 대중 매체가 쏟아내는 어수선 하고 공허한 수다는 이 침묵과 마비와 소멸을 예증한다. 우리 자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창백한 악몽 때문인지 밖에서 소란한 전쟁과 갈등은 오히려 우리에게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한다. 아직은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 절대적인 침묵의 상태 까지는 오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 소음, 공포, 분노는 사라져야할 악이 아니라 소극적이나마 이 끔찍한 악몽을 부정할 수 있게 하는 구실이다. 아직은 시간이 남았다. 그러므로 죽은자들, 죽기를 원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애도한다. 애도 그 자체가 삶의 증거이다. 애도에 항상 음악과 시가 따르는 것은 그것들이 침묵을 깰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램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국 작가 테드 휴즈(Ted Hughes)는 침묵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글(이야기)을 쓰라고 권한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했는지, 옆으로 누가 지나갔는지, 그의 모습이 어땠는지, 손짓을 어떻게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왜 말을 했는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눈짓으로, 무엇을 가리키며 내게 말 했는지를 떠올리라고. 그러다 보면 깨닫게 되는데, 바로 우리가 주변에 있는 것들을 그 자체로서 온당하게 이해하고 느낄만큼 깊고 자세히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호한 인상들 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는 저 마다 타자들을 다 빼고 저 자신만을 남긴다. 각자만의 방 속에 들어 앉아, 저 자신만의 욕망, 저 자신만의 지각, 저 자신만의 기억이라는 절대적 다양성 속에 갇힌다. 천적을 잃어버린 설치류의 청각처럼 거리와 서스펜스를 내용으로 하는 감각이 지나치게 무디어진 나머지 타자의 내부로 파고들어 지각하고 읽는 법을 잃어 가는 것이다. 자신만이 남겨진 모호하고 막연한 인상들만 읽는 영혼에게 쓰기란 불가능하다. 휴즈의 말을 들어보자.

“. . . 우리 모두가 사건의 다른 측면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나름대로는 옳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거의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며, 한 두 가지만 보고 사실들의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만일에 배심원들이 평결을 검토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서, 지난주에 당신이 받은 수업을 당신이 기억하는 식으로, 당신의 사건을 기억한다면, 그들의 평결을 납득할 수 있겠는가?
이 소음많고, 분주하고, 편리한 현대 생활 속에서, 우리는 매일 매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광경들과 소리들로 폭격을 받는다. . . . 그것들은 말 그대로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교통 소음처럼, 혹은 텔레비젼 소음처럼 그냥 우리의 흥을 돋굴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실제로 듣지 않고 실제로 보지 않고, 다만 모든 것들을 우리 주변으로 미끄러지게 내버려두는 지루한 습관을 발전시킨다. [무감각해지는 법을 배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보거나 듣는 모든 것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며, . . . 우리는 상처도 안 받고, 거기에 열광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인생을 부유하면서 아무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마치 수족관의 뚱뚱한 돌고래처럼. 거기에는 상어도 없고 범고래도 없다. 사육사가 가져다주는 음식만 있으면 된다. 거기서 사람들은 창 저편에 서 있지만, 그들은 그냥 다른 세계의 피조물일 뿐이다. 그러니 아무 문제가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며, 오로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라고는 지루함 뿐이다.
나는 최근에 한 실험을 적어놓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잠수함이 물 속으로 항해하는 영화인데, 이 영화를 미국인들과 아프리카 부족 원주민 관객들을 섞어 놓고 보여주었다. . . . 그 영화가 끝이 나고, 그들에게 무엇을 보았는지를 적으라고 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내가 말했듯이, 미국인들은 우리 만큼 살고 있고, 우리 만큼 사물을 본다. 그들의 보고를 보면, 그들이 거의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 . 그들은 물론 잠수함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어떤 움직임이었는지 거의 대부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어떤 종류의 잠수함이었는지, 그것이 심지어는 물 속에서 움직였는지 조차 추측하지 못했다. 아프리카인들의 보고는 전혀 달랐다. 아프리카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기억하고 있었다. 잠수함의 모양, 시각적인 외모들; 그들은 그 움직임 까지도 정확하게 묘사했다; 그들은 물의 외양까지도 자세하게 묘사했고, 잠수함이 지나간 바닷길 까지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 . . 당신은 어떨 것 같은가?
이제 당신이 쓰려는 이 소설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연습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냥 쓰기, 혹은 당신의 상상에 맡기기 그리고 펜으로 그것을 따라 최대로 빠르게 쓰기.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연스러워질때 까지 계속하기. 두 번째로 당신의 관찰을 연습하기. 물론 당신이 특별한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고, 그것들을 소설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알게 되면, 전에 당신이 했던 것보다 더 세밀해져야 한다. 만일에 어떤 사물이나 장소가 글 속에서 실제적이지 않으면, 그것 혹은 그 혹은 그녀는 거기에 없는 것이다. 사물, 사람, 장소들에 대하여 글을 쓸 때의 요점은, 그들이 스스로 드러나서 실제로 거기에 있듯이 써야한다. . . . 그러면 당신의 소설의 매 페이지 마다 새로운 관찰의 연습장이 될 것이다. 곧, 무엇인가가 사진적인 관찰처럼 당신에게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Ted Hughes. “Writing a Novel: Beginning” 중에서. [ ]표시는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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