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헌터: 이아고의 희생자들

더 헌터: 이아고의 희생자들

최근에 나온 <더 헌터>(The Hunter)는 도덕적 확신에 찬 제스처들(아! 교장선생님!)이 얼마나 터무니 없고 우스꽝스럽게 남을 해칠 수 있는지를 고발하는 영화이다. 아니,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어리석음 4부작’의 하나인 오셀로(Othello)에 등장하는 이아고(Iago)처럼, ‘확신’ 자체가 이미 하나의 지독한 가해이다. <더 헌터>에서 한 어린아이의 어처구니 없는 거짓말에서 비롯된 어른들—어린이는 거짓말을 못하며 순수한 존재라고 믿는—의 경솔한 폭력을 바라보며, 우리는 善, 정상, Fact라고 믿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의심 없이, 자신의 믿음과 확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없이, 善에 열광하고 惡에 분노하는 영혼이, 사실상 자신이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진부한 영혼—프레임? 프레임은 이미 우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이 살인자나 성폭행범 보다도 더 위험한 파시스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얘기로 돌아와서, 이 영화는 미디어와 우리 자신의 문제에 대한, 가령 기자와 언론이 무엇을 하는 집단인지, 무엇이 그들을 사기꾼과 살인마로 만드는지, 또 그들의 도덕주의가 무엇에 기반을 두고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지, 그 구체적 실상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고, 신문과 텔레비젼 앞에서 기도하듯이 쭈그리고 앉아 지면과 화면을 경전삼아 실명이 될 만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그들이 쏟아내는 뉴스를 Truth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격한 감정을 느끼고 목청을 터뜨리는 것으로 앙가쥬망이 실현 되었다고 자족하는 우리에게, 이아고의 희생자들이 이아고로부터 무엇을 보지 못했고 무엇을 보았어야만 했는지를 충고해주는 영화이다: 팩트나 진실이 아니라 메타-팩트와 메타-진실에 주목할 것.

결국 귀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려 힘들고 괴로운 쪽은 누구일까? 오셀로의 가장 소중했던 데스데모나(Desdemona)를 죽이고 괴로워했던 것은 가짜뉴스의 화신 이아고가 아니라 오셀로 자신이었다. 자신이 유치원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거짓말 한 아이는 유유히 치고 빠져 나갔지만, 자신들의 확신에 차 프레임에 갇혀버린 어른들은 상황이 종료되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미련이 남았는지 아니면 무슨 잔정(殘情) 때문인지 여전히 증오심을 철회하지 않는다.

더 헌터: 이아고의 희생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