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것의 의미

시시한 것의 의미

예전에 들뢰즈의 영화론을 강의할 때 애로사항이 하나가 있었다. 영화에 관한 내용이므로 영화 작품을 가져와 일부분이라도 보여주면서 개념을 설명해야 했다. 그런데 들뢰즈가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예로 들었던 영화 속 장면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시시하고 싱거운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이벤스(Joris Ivens)의 Regen(Rain)이라는 영화를 언급하면서 그는 거기서 묘사된 비를 마치 예술적으로 굉장한 이미지인냥, 순수 인상(pure impression), 순수가능성(pure possibility), 정동적 실체(affective entity) 등의 거창한 개념적 용어들로 도배를 한다. 학생들에게 이 부분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정작 이벤스의 영화를 가져와 거기서 묘사된 비를 보여주면, 학생들은 그 싱겁고 시시하고 짧은 이미지 파편에 실망을 하는 것이었다. 겨우 이런 시시한 장면을 가지고 그렇게 난리를 쳤던거야? 라고 말하는 듯한 학생들의 표정.

이 간극, 개념적 의미와 실제 이미지 간의 이 크나큰 간극(어쩌면 이론의 이상과 현실 간의 간극과도 같은)을 어떻게 메워야할지, 학생들에게 거창한 것처럼 설명했던 개념적 용어들이 실제 영화에서 이런 장면입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학생들의 실소 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그 표정들. 결국 나는 영화 장면들을 가져오지 않고 그냥 내가 그 장면을 말로 설명하는 일이 많아졌다. 오히려 직접 장면을 보여주기보다는 말로 설명하면 더욱 그럴듯 하게 학생들에게 어필이 되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그렇지 않다. 백견이 불여일문이다.

결국, 강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개념과 예시의 불균형으로 인해 학생들은 시원스럽게 뭔가를 알았다는 인상을 가져가지 못했고, 나 역시 개념과 예시 간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했다. 우리는 항상 시시한 것에 대해,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에 대해 냉소적이고 인색하다. 사실 시시함이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자신의 무능의 반영일 수 있다.

그런데 다시 말하건대 바로 이것이 들뢰즈의 철학과 예술론의 위대함이다.

우리는 모두가 니힐리스트였던 것이다! — 시시함 속에서 주목할 만한 의미를 끄집어 낼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이 거장은 식별할 수 없는 무한소들처럼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마는 이 시시하고도 싱거운 이미지들 속에 철학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강변한다.  나타난 것 같지만 금새 꺼져버리고 마는 허깨비 같은 미세한 정동들에 대한 주의 집중~! 이것이 그의 정동비평의 본질이다. 그의 비평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기준에 맞는 것이냐 맞지 않는 것이냐를 판별하는, 격자 비평, “판결식 비평”(evaluative criticism)이 아니라, 대상을 긍정하는 “가치부여 비평”(valuative criticism)이다. 문제는 눈 앞에 나타난 거창한 결과들이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새로움을 드러내고 본질을 표현하는가이기 때문이다.

 

시시한 것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