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과 사회

충동과 사회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거나 약해질 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공격적이고 반항적이고 악마적이 된다. 이것은 충동적이다. 이에 대해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의 충동(방법은 다르더라도)으로 응수를 하게 되는데, 이로써 모든 관계는 파탄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파탄의 동기가 관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치명적인 위험이나 고난이 아니라, 일상적인 말투라든가 자그마한 버릇과 같은 사소한 부분대상에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게 된다. 관계의 지속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충동의 억제 또는 충동의 반복적인 수용에 다름아니다. 물론 파탄까지 가지않고 관계가 회복되긴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충동은 사라지지 않고 쌓이고 쌓여 원한 감정으로 멍울진다. 관계가 점차 나쁜 쪽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충동에 기반하는 한 모든 인관 관계는 퇴락의 길로 치닫는다. 김동인은 <배따라기>에서 한 인물 통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말했는데, 그 때의 그 운명이란 다름아닌 충동이었다. 그것은 졸라(Émile Zola)라든가 그 밖의 자연주의자들이 대우주적 질서로 간주했던 근원적 기질이나 유전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가려움증으로 인해 발작적으로 긁는다든가, 허기로 인해 특정한 음식물을 비정상적으로 욕망한다든가, 혹은 그 음식물의 이미지가 따로 확대되어 보인다든가, 지나친 공허와 고독이 특정 대상이나 사람에 집착하고 열광하게 한다든가, 기대감의 좌절이나 불만으로 인해 고의로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상대방이 싫어할 만한 짓을 한다든가, 이유 없는 맹목적인 딴 짓이나 딴 생각이 학업과 일 나아가 사회생활 전체를 야금야금 망쳐가듯이, 이미 충동 자체는 완전한 하나의 전체를 퇴락과 해체의 대상으로 파편화시키는 작용이다. 멜꽁 땅(Melcon Tan)이나 까뮈(Albert Camus)의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자들처럼, “그 사람의 따끔거리는 목소리에 고막이 터질 것 같다”, “태양 빛이 너무 뜨겁다”하는 식의 비현실적 궤변들은 실은 우리의 안정된 일상에 감당하기 어려운 격렬한 전환점을 낳는 무시못할 방언들이다.

 

충동과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