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과 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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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클로즈업은 사물을 얼굴화(faceification)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물을 시-공간적 좌표로부터 떼어내어 혹은 추상해서 그 사물이 그동안 취하고 있었던 모든 외면적(다른 사물과의, 공간과의) 관계들 즉 현실성을 지우면, 최후에 남는 내적 관계들(그 자신 안에서의 시간적 변화)의 다양성 그 자체로서의 ‘정동'(affects)이 이미지 위에 현시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기호들의 질서로 보았던 퍼스(C. S. Peirce)는 이것을 기호의  “일자성”(Firstness)이라고 불렀다. 예컨대, 붉은색이나 푸른색에 대면했을 때 느껴지는 각각의 분위기의 직접적 현시는 의식의 이차적 재현(Secondness)에 의해 떠올려지는 감각(sense)이나 감정(emotion)과는 그 본성에 있어 다른 것이다. 중세의 몇 몇 논리학자들은 “명제”(proposition)가 표현하는 것을 일컬어 “복합적 의미가능”(significabile complexe; signifiable complex)이라고 부르면서 바로 현실적인 문장들의 배후에 내포된 정동적 힘을 긍정한 바가 있다. “이것은 붉은 색이다”와 “이것은 붉은 색이 아니다”와 같은 발화체들의 이원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그 대립의 기저에 내재하는 “실체”(entity)로서의 “붉음”(redness)과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현실태들의 존재 근거가 되는 정동은 클로즈업의 구도 속에서 현실화 된다. 그런 의미에서 클로즈업은 사물을 ‘표현’ 또는 ‘표정'(facial expression)과 동일한 위상의 절대적인 어떤 것으로 변형하는 절차라 할 수 있다. 역사적이든, 사회적이든, 기능적이든, 시-공간으로부터의 추상은 모든 사물을 얼굴화 한다. 그런데 좀 다른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위의 사진은 에이젠슈타인(S. Eisenstein)의 <이반대제>(Ivan Grozniy)의 한 장면이다. 정적들과의 불화로 고립된 이반대제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모스크바를 떠난다. 얼마 후 백성들은 황제의 복귀를 애타게 기원하며 그가 머물고 있는 궁으로 긴 행렬을 이룬다. 이 장면은 그 행렬을 바라보며 깊은 정동적 순간에 빠져드는 이반의 얼굴을 잡은 것이다. 깊은 심도 화면 안에서 얼굴은 시-공간적 좌표로부터 떨어져나와 독단적 실체로서 전면에 배치된다. 그러나 심도의 후면에는 그의 정동의 현실적 근거라 할 수 있는 민중들의 행렬이 추상적 선분의 형태이긴 하지만 응축(현실 자체가 일종의 응축이다)되어 하나의 시-공간적 차원으로 제시되고 있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차원들, 즉 이반의 정동적 차원과 군중들의 사회-역사적 차원이 하나의 클로즈업 안에서 원근법적 회로를 이루며 서로 다른 깊이로 대립하거나 접촉하면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클로즈업이 다른 클로즈업이나 다른 장면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 안에서 자신의 요소들과 다른 차원의 관계를 맺는 이 방식을 ‘클로즈업의 내재적 구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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