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느아르

르느아르

장 르느아르(Jean Renoir)의 영화에서의 크리스탈-이미지와 막스 오필스의 크리스탈-이미지의 차이를 검토하고 있다.   오필스의 크리스탈-이미지는 외부를 가지지 않는 완벽한 크리스탈을 이룬다. 서커스 무대는 그 자체가 실재 전체를 반영하는 거울처럼, 주인공 로라의 삶 전체를 재연한다. 무대 위에서 실제적 이미지와 잠재적 이미지,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면서 서로 교환하면서 돌아간다.

르느아르의 경우에도 이러한 크리스탈-이미지가 있다. The Little Match-Girl에서 소녀가 죽어가면서 성냥을 켜자 환타지와도 같은 이미지들이 돌아가는 거울과 크리스탈의 형태로 등장하면서 현실태와 잠재태를 순환시킨다. 이러한 크리스탈-이미지의 순수한 연극성의 절정을 보여준 것이 The Golden Coach에서의 연극 장면이다. 카메라는 연극의 무대를 멀리서 조망한다. 무대 위에는 인물들과 세트가 설정되어 있다. 카메라는 점점 무대로 다가가다가 급기야는 무대 위로 올라가 인물들을 연극이 아닌 실제적인 것으로 보여주기 시작하고 영화는 시작한다. 연극성을 지시하는 수준에서 연극 내부로의 침잠을 통해 현실태와 잠재태가 식별불가능한 거울 이미지가 나오는 식이다.

<게임의 법칙>(La régle du jeu)에서도 귀족들이 즐기기 위해 즉흥적으로 만든 연극이 나오지만, 이 연극은 오필스의 무대와는 다르게 완전히 자족적인 크리스탈-이미지를 형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돌아가는 크리스탈이 균열이 생기고, 연극성 속에 사로 잡혔던 인물들이 무대 외부로 방사 되면서, 그 내용물들이 크리스탈 밖으로 터져 나온다.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이 서로에 대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불륜 행각을 벌이고, 서로 사냥을 하고, 숨고, 추격하고, . . . 그리고 이 균열과 파열을 보증해주는 것이 “심도화면”이다. 연극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심도는 숨어버린 두 애인의 불륜행각을 드러낸다. 전경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귀족들의 교양은 심도 깊은 곳에서 그들의 짐승같은 충동들이 펼쳐진다. 이렇게 해서 르느아르의 심도화면은 깨지거나 금이간 크리스탈의 저편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게임의 법칙>에서 한 가지 인상깊은 장면이 있다. 바로 별장에서의 토끼사냥 장면이다. 부르주아 귀족들은 별장으로 놀러와서 잡아 놓은 토끼를 한꺼번에 풀어 사냥을 한다. 이들이 한 곳에 집결하여 일렬로 서 있고, 반대편에서 하인들이 토끼를 몰아 오면 총을 쏘아 잡는 것이다. 땅에 붙어 잘 보이지도 않을만큼 자그마한 토끼들이 무차별적인 총세례에 부르르 떨며 죽어간다. 부르주아들은 서로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교양있고, 상냥하지만, 이들이 사냥으로 살육을 하는 장면에서는 무자비하고 무지막지한 짐승들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부르주아 귀족은 어디에서나(파티와 연회 등) 크리스탈을 사랑하는 부류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크리스탈-이미지이다. 사냥 장면은 이들을 고발하는 보기드믄 대단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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