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적 기계주의: 한계상황에 대응하는 테크놀로지

아나키즘적 기계주의: 한계상황에 대응하는 테크놀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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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를 부정하고 기계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생각했던 채플린과는 달리 기계와 동맹을 맺고 기계의 한 요소가 되어 재난과 같은 한계상황을 돌파하는 테크놀로지가 있다. 데이빗 로빈슨(David Robinson)이 지칭하여 흔히 “탄도 개그”(trajectory gag) 혹은 “기계 개그”(machine gag)라고 알려진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의 코미디는 극한의 자연환경(태풍, 홍수, 바다 등)이나 거대한 기계장치(선박, 기차, 집 등)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작은 인간이 이 환경을 뚫고 나가는 과정을 재현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기계에 맞서 싸우거나 기계를 부정하기 보다는 기계의 운동과 힘을 변조하고 이용하여 거대한 질서를 기능적으로 변환한다. “골드버그 머신”(Goldberg Machine)으로 예시될 수 있는 이러한 기계주의가 키튼의 영화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것은 채플린과는 다른 관점에서의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키튼은 인간이 기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계적이 되고 기계의 요소가 되고 기계를 이용하는 인간을 재현한다. 이러한 기계적 현실화를 “아나키즘적 기계주의”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의 거대기계 메커니즘을 소형화하여 기계의 효용성을 민주화하고자 했던 이반 일리히(Ivan Illich)의 사회이론과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아나키즘적 기계주의: 한계상황에 대응하는 테크놀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