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침묵

예술과 침묵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하찮은 기사들로 돈을 벌어 살아가는 어떤 신문과의 언쟁에서 얻은 교훈으로 현대성을 비판하는 논문을 쓴다. 그 중에서 현대인들의 무가치한 수다(talkativeness)의 원인들(매스컴은 그 선봉에 서 있다)을 지적하면서, 수다에 대립하는 침묵의 의미를 예술의 경우를 예를 들어 해설한다.  

예술작품을 지배하는 법칙이, 규모는 훨씬 작지만,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각자에게 적용된다. 본질적인 체험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험과 동시에 관념적인 의미에서 반대의 가능성까지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체험한다. 미학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여러 가능성은 그의 합법적인 재산이다. 그러나 그의 사적이고 인격적인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의 담화나 그의 작품은 침묵에 의지한다. 그의 담화와 그의 작품의 관념상의 완전성은 그의 침묵과 일치할 것이고, 관념은 질적으로 반대되는 가능성을 포함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침묵의 절대적인 표현일 것이다.”(키에르케고르, 〈현대의 비판〉, 272-273)

본질적인 경험은 개인성의 한계 너머에 도달하는 경험으로, 자신의 외부 반대와 모순의 가능성까지도 대면하고, 이를 포함한 경험이다. 예술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비개인성에 도달하는 문제인 것처럼, 일상 생활에서도 이와 같은 비개인성의 법칙이 작지만 적용될 수가 있다. 그러나 개인의 사적인 현실, 개인적인 현실은 예술의 비개인성과는 사정이 다르다. 개인성은 삶의 이해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이익, 사적인 목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삶의 모순적 강렬함을 회피하기 때문에, 개인성 너머의 변증법적 규형을 잃어버리기 쉽다. 따라서 관념적 담화나 예술작품은 현실적 발화 보다는 침묵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침묵이란 발화이전의 비결정적 상태이고, 내면에서 다중적인 의견이 경쟁을 벌이는 상태이고, 모순과 갈등이 가능성으로 고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변증법의 내적 조건, 관념의 내적이 바로 침묵이다. 따라서 질적으로 반대되는 가능성을 포함하는 변증법적 균형은 침묵의 절대적인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가 자신의 현실성을 남용하자마자 그는 이제 더는 본질적으로 생산적이 되지 못한다. 그의 시작은 그의 종말이 되고, 바로 그의 단어는 관념의 중용(modesty) 대한 죄가 것이다.”(273)

현실원칙에 따르면 예술적일 수가 없고, 관념의 중용성, 비개인성, 반대의견까지도 포함할 있는 비개인성을 잃고, 사적인 수다로 전락할 뿐이다.

따라서 이런 유형의 예술 작품[개인적 현실을 남용하는 작품] 미학적인 견지에서 말해 일종의 사적인 수다라고도 있다. 그런 사실은 그것이 반대되는 것과의 균형을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인지된다. 왜냐하면 관념이란 정반대되는 것들의 균형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일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받은 사내가 실제로 잡다한 관념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는 그가 겪은 체험의 고난과 마찬가지로 행복도 똑같은 애정을 지니고 재생할 것이다. 그가 관념을 획득하는 조건은 침묵이고, 침묵으로 그는 자신의 현실적 개인성(real personality) 닫아버린다. […] 주택의 현관을 위병의 교차된 총검으로 막듯이, 인간의 인격에 대한 접근은 평형을 이루고 있는 관념 속에서 질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관념의 변증법적인 교차로 막는다.”(273-274)

개인사에 머문 예술작품은 모순적 강렬함(변증법적) 동반한 균형을 잃어버리고 개인의 사적인 수다에 머물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개인성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것이다. 관념적인 것을 내포한 예술작품은 개인성을 떠나 비개인적 관념을 획득하여 우리가 현실에서 있거나 보고싶은 말고도 우리와 반대되고, 우리를 탄핵하는 까지도 포함한 경험을 보여주기 때문에, 균형을 잃은 현실적 개인은 작품의 균형감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거나,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

여기서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침묵이란 발화로 현실화되기 이전의 생각들이 다양하게 마음 속에서 비결정적 상태로 갈등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상태이다. 내면에서 다중적 의견이 가능하고, 여기서 모순과 갈등의 균형(정과 반의) 이루어지는 상태이다. 변증법의 내적 조건이며, 이러한 침묵이 바로 관념을 가능케하는 조건인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한가지 특색은 ‘변증법’을 마치 어떤 윤리적 형식인 것처럼 ‘균형감’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 노트는 키에르케고르의 에세이 〈현대의 비판〉(Our Present Age)에서 발췌한 내용을 해석함.

참고로 한글로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 부분은 영어본을 대조하여 원문을 삽입하거나 변형함.

페이지는 한글본(쇠얀 키에르케고르, 〈현대의 비판〉, 임춘갑 옮김, 서울: 도서출판 치우, 2011)을 인용함.

  

예술과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