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몽테

로라 몽테

막스 오필스(Max Opuls)의 <로라몽테>(Lola Montez)를 검토 중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서커스 무대는 완벽한 크리스탈-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시간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선 그것은 시간-이미지의 한 양태라 할 수 있고, 그것이 완벽한 이유는 외부를 상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간 내부에서 현재와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실태와 잠재태가 완벽하게 내재적 관계를 맺으며 공존하기 때문이다. 시간 즉 실재 전체가 마치 공중에 매달린 크리스탈 조명처럼 빙빙 돌아가는 서커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다.(이런 식의 빙빙 도는 크리스탈-이미지로 구성된 영화들은 아주 많다. 레네, 맨키비츠, 펠리니, 심지어 오손 웰즈 . . )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서커스 무대가 돌아가며 무대 위에 오른 로라의 기괴했던 과거가 사회자에 의해 소개 된다. 그리고는 그녀가 살았던 어떤 특정한 시기로 들어가 에피소드(과거)를 쏟아낸다. 그리고는 다시 서커스 무대(현재)로 되돌아와 다시 그녀는 돌아가고 그녀의 다른 과거의 지층들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서커스 무대, 다시 과거의 지층들, . . . 이렇게 빙빙 돌아가는 크리스탈-이미지는 현재와 과거를 플래시백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플래시백이 뭔가? 시간의 간접적 제시가 아닌가? 플래시백은 두 개의 현재적 이미지 또는 실제적 이미지를 오버랩이나 음악과 같은 통사적 표지를 통해 연결해서 시간을 암시하는 방식이 아닌가? 들뢰즈가 말했듯이, 플래시백은 “자, 이제부터는 과거입니다!”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현실태와 잠재태, 현재와 과거, 실제적 이미지와 잠재적 이미지가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 이미지들로 잠재적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 플래시백이 아닌가? 따라서 그 서커스 무대는 우리에게 과거의 시간을 탐색하기 위해 실제적 이미지들을 방사하는 이미지, 즉 동질화된 이미지들을 통한 시간의 간접적 재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스탈-이미지가 시간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들뢰즈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닌가?

아니다. 크리스탈-이미지는 플래시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기서 나오는 플래시백은 단지 부수적인 것이었을 뿐이고, 이미 서커스 무대에서 여러개의 시간의 선분들로 갈라지고 있었으며, 현재, 과거, 미래는 이미 무대 위에서 공존하면서 이중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자 루아얄의 멘트들이 흘러나올 때 무대 뒤에서 손톱을 물어 뜯으며 상념에 젖어 있는 로라의 모습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실제적 이미지인 서커스 장에는 이미 과거가 현재 속에 공존하면서 시간을 이중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플래시백이 없어도, 이미 그 서커스 장면들은 하나의 완벽한 크리스탈-이미지라 할 수 있다.

두 개의 이미지를 외삽하는 식으로 시간을 간접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 안에 다수의 시간이 다중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들뢰즈의 논증은 자유간접 주관성에 대한 전통적 입장(객관적 발화와 주관적 발화 두 개의 진술이 결합되었다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언어학(바흐친도 포함하여)의 입장(하나의 발화 내에서의 다수의 진술 주체로의 다중화)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로라 몽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