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상위 원리로서의 선(도덕)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고전적 정치관에서 벗어나 정치를 현실 내재적인 힘(fortuna)을 통해 사유함으로써 그것의 현대적 기념비를 세웠다.

예컨대,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군주는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지는 못할지언정 경외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경외심이란 두려움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군주는 인자함이나 자애심이 아니라 두려움의 아우라를 통해 통치를 해야 한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논법이 항상 그렇듯이, 둘 다 가지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자애와 두려움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군주가 나라를 망치는 것만큼 크나 큰 죄악은 없으므로, 결국 나라를 잘 통치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을 해야 한다면 전자가 아닌 후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익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자애와 사랑으로 인한 의무의 끈을 져버릴 수는 있지만, 처벌의 두려움 속에서는 웬만해서는 끈을 잡은 손에 긴장을 풀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가 살균된 진공 속에서 중단없이 퍼지는 고결한 메아리가 아니라면, 군주는 매 순간마다 부딪치고 갈등하는 인간의 불가피한 현실을 직시해야 하고, 이에 원칙적 이상 보다는 현실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도덕적인 군자가 아니라 현실적인 통치자가 될 것.

물론,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게 내려 앉은 이 가르침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정치란 무엇을 구현하는 것인가? 아니 그보다도, 정치가 실현해야 할 현실적 인간의 지복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제한 사항’으로 제시한 한 가지 만은 이견이 있을 수 없는 틀림없는 진리처럼 보인다. 그는 군주가 백성들로부터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더라도, 절대로 ‘경멸’과 ‘증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특히 남의 ‘재산’에 손을 대는 군주는 반드시 경멸과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공헌했다. 이 또한 현실적 인간의 속성에 기인하는데, 그에 따르면,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어버려도 물려 받은 유산의 손실 만큼은 결코 잊어버리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얘기로 돌아와서, 폭군이나 독재자들이 사람들의 재산에 손만 대지 않았어도 양상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독재자를 사랑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아니 그 보다도 최소한 경멸에 찬 조롱 만큼은 면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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