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축과 이완

수축과 이완

들뢰즈는 베르그송의 ‘지속'(dureé) 개념을 설명하는 가운데,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적 일원론”에 관한 아름다운 구절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정신과 물질은 전혀 다른 두 세계 같지만, 실은 하나의 세계가 수축하거나 이완되어 여럿으로 다양하게 공존하는 결과이다. 가령, 정신의 무한한 이완 상태는 회상과 꿈(무의식)이 될 것이고, 그것이 점점 수축되어 ‘지각'(perception)이 되다가, 곧 수축된 지각은 점차 물질이 되었다가, 또 더 나아가면 연기라든가 공허와 같은 물질적 이완상태가 무한하게 연장되어 점차 우주론적으로 팽창하게 된다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 속에는 물질의 표상이, 물질 안에는 정신의 형식이, 또 수축 속에는 이완이, 이완 속에는 수축이 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이란 꿈의 수축상태이고, 꿈이란 현실의 이완상태인 셈이다. 이것이 베르그송주의의 “이원론적 일원론”이며, 그 안에서 모든 존재는 수축과 이완의 정도들의 공존이라는 명제가 나온다.

웃을지 모르겠지만,
생활의 측면에서 볼 때, 현실적 필요 즉 수축 상태를 상실하거나 포기하고 무한한 이완상태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있고, 생활의 필요에 종속되어 부지런한 노동 속에서 수축된 현실을 살아가는 삶이 있다. 우뚝 솟은 고지에 오르려면 수축해야 한다. 그러나 수축은 삶의 이완이 주는 어떤 혜택, 즉 보다 전체의 지각은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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