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겨울

마른 겨울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흔히 하디의 문학을 염세적이고 비관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시들을 보면 그러한 면이 강하다. 사실 그것은 하디만 그런 것이 아니라, 19세기 후반의 서구 현대인이 지배적으로 취한 정서였다. 산업, 과학, 사회, 계급, 문화. . . 모든 측면에서 현대인들은 점차 자신들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기 시작했고, 환상과 바램 속에서만 떠올릴 수 있었던 자신의 욕망을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으로 취하고자 했고, 또 그럴 수 있었다.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들여다 보고는 깜짝 놀란 것이다. 어쩔줄 모르던 서구 현대인은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 냉소와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커져 사리를 분별할만큼 성장한 아이가 아버지를 죽이고(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고아가 되어 혼자 남아 훌쩍이면서, 느닷없이 쟁취한 무한한 자유와 그 그림자인 불안과 공포를 안고, 과학이나 산업 그리고 도시가 개인에게 가했던 무성의한 푸대접을 감수하며, 모든 것에 회의를 느낀다. 인생은 생각했던 것에 비해 그다지 의미있는 그 무엇도 아니고, 단지 어쩌다 태어나, 어쩌다 마주치게 된 사소한 사건들의 연속일 뿐이다. 그 사소한 사건들을 최종적으로 거두워, 그래도 그것들은 의미가 있었어! 라고 위안을 주며 나를 구원해줄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있다고 해도 꾸지람이나 처벌만 내리는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존재라고 말이다. 희망이라는 것 또한 그가 부여한 도덕적 책임의 한 형식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이다. 낭만주의자들과 서정시인들이 그토록 부르짖고 찬양해 마지 않던 “사랑”조차도 이들에게는 지독한 기만이고 거짓이고, 그 믿음이 크면 클 수록 되돌아올 비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더 이상 달콤한 봄이나 요란한 여름이나 우아한 가을날의 화사한 색채가 아니라, 음산하고도 우울한 회색조 마른잎이 나뒹구는 겨울에 불과했다.

Neutral Tones

We stood by a pond that winter day,
And the sun was white, as though chidden of God,
And a few leaves lay on the starving sod;
— They had fallen from an ash, and were gray.

Your eyes on me were as eyes that rove
Over tedious riddles of years ago;
And some words played between us to and fro
On which lost the more by our love.

The smile on your mouth was the deadest thing
Alive enough to have strength to die;
And a grin of bitterness swept thereby
Like an ominous bird a-wing . . . .

Since then, keen lessons that love deceives,
And wrings with wrong, have shaped to me
Your face and the God-cursed sun, and a tree,
And a pond edged with grayish leaves.

우린 그 겨울 연못가에 서 있었지,
해는 창백했어, 신의 꾸지람을 받았는지,
굶주린 잔듸 위에 낙엽들만 있었어;
— 물푸레나무에서 떨어져, 잿빛이었어.

나를 보던 당신의 눈은 배회하는 눈 같았어
수년전의 따분한 수수께끼들을 배회하던;
서로 주고 받았던 몇 마디 단어들을 기웃거리던
우린 사랑으로 잃은게 더 많았지.

당신 입가의 미소는 맥빠진 것이었지
죽을 힘이나 겨우 남아있는;
그러니 쓴 웃음만 스쳐가는
불길한 새의 날개짓 같았지 . . . .

그로부터, 사랑은 기만이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고,
쓰라린 교훈이 내 마음 속에 새기더군
당신의 얼굴과 신이 저주한 태양, 한 그루의 나무,
그리고 잿빛 낙엽이 에두른 연못을.

그러나 이 감상적이리만큼 지독한 우울과 비관과 회의의 한편에는, 지금의 우리였다면 팔짱을 끼고 서서 시큰둥했을 생소한 믿음과 희망에 대한 분노, 그리고 말할 수 없는 항변 같은 것이 있다.

마른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