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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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사리에 밝고 활동적으로 살고 있는 C가 어느날 자신의 블로그에 ‘삶의 허망’에 관한 취지로 짧은 글을 올렸다. 그 말의 요지는 이렇다: “문학과 법”의 관계에 관한 연구서 한 권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자신의 연구 주제와 관련이 있어 도움이 될까 싶어 빌려 놓긴 했지만 읽지는 않고 구석에 치워 놓았다. 얼마 후 그 책이 생각이 났고, 반납이 임박한 책의 여기저기를 훑어본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헛되고 허망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자기와 같은 그저 몇 안 되는 관심 독자들에 의해 구매도 아닌 도서관 대출로 주목을 끌고, 심지어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어쩌다 생각이 나서 무성의하게 읽히는 신세에 불과한 책의 가치. 자신이 앞으로 쓸 책도 결국 이 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운명을 밟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자신의 작업과 인생 전반에 회의감 같은 것이 밀려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 얼마 후 그의 글 밑에는 자그마한 댓글이 달렸다. 매사에 따지길 좋아하고 니체(F. W. Nietzsche)를 신봉했던 후배 J가 C의 글에서 풍기는 ‘천박’을 간파하고 남긴 글이었다. 그는 니체를 인용하며 이렇게 썼다.

“니체는 자신의 책이 팔리지 않고 아무도 주목해 주지 않자, 실망하기는 커녕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책의 진정한 독자는 신과 대지이지 천민들이 아니다!’ 제 아무리 왕성한 활동으로 삶을 요란한 활기로 채운다 해도 결과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 니체식으로 말해 천민성을 버리지 못하는 한, 우울한 니힐리즘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진리가 다름 아닌 선배의 입에서 말해지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C는 이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을 좀 달리 시도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J의 작은 기대는, 항상 그랬듯이 또 다시 침묵 속으로 잦아 들어가 버렸다. ‘변화의 덕’(virtue of change)은 언제나 폭력과 좌절이라는 강요의 형태로만 실현될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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