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사람

떠도는 사람

집이 어디냐고 질문을 받은 한 떠돌이가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저기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한 곳에 머물러 오랫동안 정착하는 것은 선호하지 않습니다. 수 년간 머무는 경우에도 여의치 않으면 금새라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고용된다는 것이 아주 거추장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건을 많이 가지는 것 역시 방해가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물론 먹고 살아가려면 이미 터전을 장악하고 있는 재산가나 권력자와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하지만 계약이 고용의 형태가 되어 전적으로 고용인의 관리와 보호를 받는 외디푸스적 관계는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물론 어떤 점에서 보면 갑도 을도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 결국 갑을 정당화하고 빌미를 제공해주는 유아적 처사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고용이 대안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새로운 형태의 연대 가능성 역시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연대를 할 수 없다면, 이것이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의 유목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재산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재산은 개인을 고착시킵니다. 재산을 가진 사람은 머물러야 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하고, 또 그만큼 외부와 단절해야 합니다.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서 고독하게 샴페인을 홀짝거리는 이 호사스런 불행은 모든 가능한 연대와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가로막아 버립니다. . . .”

결국 그는 어느 누구의 요구도 들어주지 않아 그들로부터 버림받을 운명이다. 누구와도 연대할 가능성 역시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밑으로 내려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가장 밑바닥에 도달한 자신, 영토를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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