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쇼트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쇼트

2차 대전을 전후하여 활약했던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Ozu Yasujiro)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특유의 카메라 시선을 창조했다. 흔히 “다다미 쇼트”라고 불리는 것으로, 피사체를 낮은 자세에서 잡은 장면을 말한다(특히, 인간의 시야와 친숙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깊이감을 주는 망원렌즈나 넓은 시야를 보여주는 광각렌즈보다는 표준렌즈를 사용했다).

이 장면은 그의 작품 <부초>(floating weeds)의 한 장면을 자른 사진인데, 이를 보면 카메라가 거의 지면에 붙어서 포착한 장면처럼 보인다. 낮은 자세에서 사물을 바라볼 때, 저러한 독특한 이미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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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Still Life)과 풍경(Landscape)을 중첩시켜 화면 안에 채움의 경향과 비움의 경향이 묘한 긴장을 이루는 아래와 같은 놀라운 이미지도 있다.

다다미쇼트는 주로 집안이나 방안의 정경을 보여주는데 사용된다.

위의 사진 역시 <부초>의 한 장면인데, 먼 곳으로 유랑하던 남편이 몇 년 만에 돌아와 저쪽 방 안에서 약간 처량하게 담배를 태우고 있는 동안, 아들과 살며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는 그를 위해 술을 데우고 있다. 부엌의 마루 아래쪽에서 그녀를 올려다 보며, 카메라는 마치 그녀의 고독과 원망을 슬쩍 훔쳐보고 있는 듯 하다.

유랑극단의 단원들이 빗소리를 들어가며 처량하게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멋지게 공연하려던 계획은 관객의 냉담으로 수포로 돌아가고, 갑자기 내리는 비는 갈 곳 없는 이들의 절망을 배가한다. 낮은 구도로 그들의 굽은 등 뒤를 포착하여, 마치 옆에서 함께하는 누군가의 공감 어린 시선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이 장면은 수 년간 유랑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아들과 오랜만에 재회하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비천한 계급 때문에 아들이 사회적으로 부당한 대접을 받을까 두려워, 아내와 함께 작정을 하여 자신이 삼촌이라고 속인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힘차게 쭉 뻗어 자란(서로를 꽉 물고 있는 저 단단한 엉덩이를 보라!) 아들을 바라보며, 한편에는 뿌듯함과 대견함이, 다른 한편에는 아버지임을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카메라는 마루 아래 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 전체를 올려다보며, 아들의 성장이 얼마나 힘찬지, 그리고 아버지의 쇠잔함과 왜소함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는지를 대조하고 있다.

다다미쇼트는 다다미에서 앉은뱅이처럼 좌식 생활을 하는 일본가정 환경에서 일본인들이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한다. 또한 마치 가부키나 가면극의 무대 아래에서 무대 위를 관람하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을 갖추고, 뒷마당으로 활짝 난 창 밖이 마치 무대의 배경처럼 설정되어, 일종의 액자형(proscenium frontage)의 구도를 드러낸다. 카메라는 가만히 정지한 채로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고, 이 액자 같은 무대 위에서 인물들이 들어오거나(frame in) 밖으로 나감으로써(frame out),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장면들을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다다미 시선의 구도는 서구인이 사물을 바라보는 환경과는 전혀 다르다. 서구인들은 주로 의자에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혹은 침대에 누워 있다. 이들은 방바닥에 앉아서 사물을 바라보는 경우가 흔하지 않아, 대부분 선 자세에서 허리 위, 혹은 어깨 정도의 높이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구도가 지배한다. 그들의 시선은 행동을 준비하거나, 행동과 관련되어 있는 시선이다. 그러니까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자는 그들과 물리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러나 다다미 시선은 바닥에 앉아 있거나 누운 자세에서 사람의 무릎 정도의 높이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이는 행동적 시선이 아니라 관조적 시선에 가깝다. 우리는 바닥에 앉거나 누워 뭔가를 생각하고, 사색하고, 관찰하는 시선에 사로잡힌다. 물리적 관계보다는 정동적 관계, 즉 무엇인가가 느껴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다다미 시선은 사물을 바라보는 구도의 독특함을 반영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는 사물에 대한 관찰자의 독특한 태도, 그리고 특유의 정서와 분위기를 반영한다. 서구의 역동적 시선과는 다르게, 관조적 시선에 의해 우리는 사물과 인물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또한 카메라가 인물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앉은 자세나 누운 자세로 올려다 봄으로써, 그들이 크고 거대해 보인다. 인물들 곁으로 깊숙이 들어와 앉아 있는 제3의 시선이 그들과 함께하며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서구의 행동적 시선이 아니라 동양적 관조와 정감의 시선이 다다미 쇼트의 본질일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든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조깅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서구인들은 오즈의 영화를 보고 그 낯선 이미지에 대단히 놀랐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세계가 전혀 다르게 보였고, 그 이미지가 세계에 대해 전혀 다른 무언가를 촉발했던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