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정치

영미문학, 특히 영국문학의 핵심을 ‘모호성’이라고 규정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로, 이들 문학사를 뒤져보면 모호성을 추구하는 작가들이 아주 많다. 너무나 심오해서 무시무시한 회색빛의 대자연에 경도 되었던 멜빌(Herman Melville),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흐름에 실려 자신의 이득을 취한다는 “현명한 수동성”(wise passiveness)이라는 그야

공포분자

권력은 항상 공포를 이용해 대중 다수를 통제해 왔다. 초자연적이고 주술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공포, 구원과 처벌이라는 허구에 심리적인 개연성을 보장하는 보편적 죽음의 공포 등. 어떤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공포와의 싸움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외부의 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과의 싸움은 권력이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animation)은 운동 중에 있는 사물의 기계적 포착이 아니라 상상의 형상을 손으로 직접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은 이상적인 포즈(ideal pose)를 구현하는 예술인 회화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이 전적으로 영화에 속하는 이유는 그것을 구성하는 각 컷들이 인물화나 초상화처럼 완결된 형태로 부동하는

크리스탈-이미지와 돈

자기를 반성하는 제스쳐처럼 보이는 ‘영화 속의 영화나 영화 제작’이라는 자기반영 이미지에 새롭고 특이한 깊이를 부여해주는 근거는 무엇일까? 이를 정당화해 줄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단지 부차적인 방법이나 형식주의적 유희에 머물고 말 것이다. 영화 제작의 불가능을 그린 벤더스의 <사물의 상태>(Der Stand der

미디어와 선택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주류 미디어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뉴스를 비주류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된다. 깔끔한 웰메이드 이미지는 아니지만, 거친 이미지 그 자체가 그 반대 보다 신뢰성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스캔들의 형태로, 때로는 소문의 형태로, 때로는 음모의 형태로, 보기에 따라서는 실상에

베르토프의 몽타주: 물질-눈

에이젠슈테인, 푸도프킨, 도브첸코의 변증법적 몽타주 구성은 각각 ‘파토스’, ‘의식’, ‘추상’이라는 변증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유물론을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이해―가령, 혁명이나 민족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한다는 사실이며, “자연이 인간적 총체성 안에 편입되어 있을 때에만 온전히 변증법적일 수

몽타주와 플랑세캉스

몽따주의 대가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은 영화 예술이 해야 할 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고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몽따주는 재료로서의 현실적 파편들(쇼트, 세포, 사건 등)의 변증법적 기양(Aufhebung)이며,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창조 과정이다. 각각의 파편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유기적 평론가

다른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특히 영화 분야에는 유기적 평론가들이 많다. 유기적 평론가란 영화 제작과 판매의 일부 기능이 되어 영화를 해설해주는 평론가를 말한다. 그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상징과 소품과 기법 등을 끄집어 내어 그것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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