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공지능이로소이다

야구 중계를 본 지가 하도 오래되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에 야구 중계를 보다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희한한 장면 하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심판의 판정을 판정하는 심판의 존재입니다.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상황을 두고 심판이 아웃을 선언합니다. 그랬더니 아웃을 당한 팀 불펜에서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비디오 판독—합의판정?!이라는 해괴한 용어로 인간적 […]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상위 원리로서의 선(도덕)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고전적 정치관에서 벗어나 정치를 현실 내재적인 힘(fortuna)을 통해 사유함으로써 그것의 현대적 기념비를 세웠다. 예컨대,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군주는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지는 못할지언정 경외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경외심이란 두려움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군주는 인자함이나 자애심이 아니라 두려움의 아우라를 통해 통치를 해야 […]

채플린과 키튼: 휴머니즘적 도구주의와 무정부주의적 기계주의

채플린의 코미디 ‘소극’(burlesque)은 계열들의 조우와 충돌의 집합이다. 즉 행동의 계열들이 있고 이 계열들 사이에 다른 계열이 삽입되어 질서 전반이 엉켜 버리는 것이다. 여자와 춤을 추다가 다른 여자의 춤으로 끼어든다든가, 길을 지나가다가 앞에서 다가오는 소년과 마주치면서 소년에게 지팡이를 낚인다든가, 국수를 먹다가 리본이 국수에 떨어져 자신도 모르게 그 리본을 먹는다든가, 세수를 하다가 […]

궤도타기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에 정면으로 맞서거나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에는 힘의 한계가 느껴지거나 무모하다고 판단될 때 최선책은 무엇일까? 집채 만한 바위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아래는 ‘우리 자신들이’ 사는 집이 있다.  바위에 직접 맞서서 막을 힘이 현실적으로 없다. 깨부술 전략이나 도구도 없다. 그런 것들을 마련하기엔 너무 긴박하다. 그동안 뭘 했는지 후회가 […]

스트로하임과 브뉘엘: 엔트로피와 영원회귀

스트로하임(Erich von Stroheim)과 브뉘엘(Luis Bunuel)의 차이—개체발생론적 하강과 계통발생론적 반복—에도 불구하고 자연주의의 시간은 모든 개체와 종이 저주를 받은 것처럼 퇴락의 길로 추락하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물론 지속으로서의 시간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 하나는 생명의 질서를 보존하고, 개체와 세계를 분할-형성하는 방향이다. 한편 시간은 분할된 개체들을 액체 환경 속에서 해체하듯이 근원적 평형 […]

회색정치

영미문학, 특히 영국문학의 핵심을 ‘모호성’이라고 규정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로, 이들 문학사를 뒤져보면 모호성을 추구하는 작가들이 아주 많다. 너무나 심오해서 무시무시한 회색빛의 대자연에 경도 되었던 멜빌(Herman Melville),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흐름에 실려 자신의 이득을 취한다는 “현명한 수동성”(wise passiveness)이라는 그야 말로 모호한 능력에 주목했던 워스워드(William Wordsworth), 마치 범신론적 신처럼 뚜렷한 […]

공포분자

권력은 항상 공포를 이용해 대중 다수를 통제해 왔다. 초자연적이고 주술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공포, 구원과 처벌이라는 허구에 심리적인 개연성을 보장하는 보편적 죽음의 공포 등. 어떤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공포와의 싸움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외부의 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과의 싸움은 권력이 대중의 마음 속으로 잠입할 수 있었던 주요 서사의 테마이다. 권력은 […]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animation)은 운동 중에 있는 사물의 기계적 포착이 아니라 상상의 형상을 손으로 직접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은 이상적인 포즈(ideal pose)를 구현하는 예술인 회화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이 전적으로 영화에 속하는 이유는 그것을 구성하는 각 컷들이 인물화나 초상화처럼 완결된 형태로 부동하는 이상적 포즈가 아니라, 운동하고 있는 궤적 위에서 불특정한 순간에 포착된 […]

크리스탈-이미지와 돈

자기를 반성하는 제스쳐처럼 보이는 ‘영화 속의 영화나 영화 제작’이라는 자기반영 이미지에 새롭고 특이한 깊이를 부여해주는 근거는 무엇일까? 이를 정당화해 줄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단지 부차적인 방법이나 형식주의적 유희에 머물고 말 것이다. 영화 제작의 불가능을 그린 벤더스의 <사물의 상태>(Der Stand der Dinge)에서는 마치 영화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한 것처럼 우울한 자조에 빠져 […]

악마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한나 아렌트(Hanna Arendt)는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재판을 관찰하면서, “세상의 모든 잔혹한 일들을 모아 놓은 것 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우리의 도덕적 상상과는 달리 “그가 도착적이거나 가학적인 괴물(“푸른 수염의 사나이”)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라고 술회한다. 그는 이아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리처드 3세처럼 스스로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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