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무의식

사진의 무의식

사진은 인간의 시각이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 사물에 접근하게 한, 말하자면 예술이 아닌 기술 매체이다. 인간의 지각은 시시각각 변덕스럽고, 쉽게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며, 개인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믿을만한 객관성을 보증하지 못한다. 개인이 목격한 어떤 사건은 법정에서 증언적인 가치로서 참고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명백한 의미에서의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객관성을 입증하려면 목격자 자체의 신뢰성을 증명해야 하고, 그의 증언에 뭔가 추가로 비인간적인 절차가 필요하다(법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불신한다). 예컨대 과학적 증명과 같은 신의 지각에 의존하든가, 아니면 사진이나 동영상과 같은 기계의 지각이 첨부되어야 하는 것이다(디지털 시대엔 또 다른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카메라는 그 기계의 본성상 객관성의 도구이다. 애초에 사진이 등장한 이후, 그 객관적 성질 때문에 인간은 세계를(인간 자신조차도) 차갑고 비정한 그 무엇으로 경험하기 시작한다.

사진의 객관성은 눈에 보이는 사물에만 관계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은 인간이 지각할 수 없는 무의식적 영역 조차도 객관적인 그 무엇으로 만들었다. 가령 우리는 물건을 쥐거나 길을 걸을 때 손동작이나 걸음걸이를 막연히 추측만 할 뿐이지 손놀림과 발 동작의 세세한 부분까지 포착하고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카메라는 고속촬영이나 렌즈와 같은 보조장치를 이용해서 이들을 잡아내고 보존한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했듯이, 정신분석이 인간의 충동적 무의식을 밝히는 분야라면, 카메라 기술은 사물의 “시각적 무의식”(the optical unconsciousness)을 밝힌다.

인간이 시각적 무의식을 인식하자마자, 마치 정신분석에 의해 꿈의 세계가 열린 것처럼, 현실은 인간이 바라보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현실은 기괴하고 부조리해 보였으며, 더 이상 인간이 상상했던 균형과 비례를 갖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카메라 같은 기계가 펼쳐놓은 현실은 기계가 주는 정밀한 대칭의 이미지와는 반대로 뒤틀리고 일그러져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카메라 기계가 보여준 시각적 무의식이 불균형적이고 뒤틀린 현실을 제공하긴 했지만, 오히려 다른 한편 인간이 대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주었다. 특히 인물사진에서 그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사진을 찍는 예술가나 사진에 찍히는 모델의 의식을 넘어서는 시각적 무의식은, 그 인물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어떤 본성을 몸 밖으로 빠져 나오게 한다. 사진에 찍힌 인물은 그 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독특함을 외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자기 자신의 무의식적 본성, 그야말로 어떤 뒷모습, 즉 물리적(육체적) 외양을 넘어선 그의 역사 전체에 비견될만한 특유의 시간을 무심코 드러낸다.

다음 사진을 보자.

Kertesz_mondrian

이 작품은 케르테츠(André Kertész)가 1926년에 찍은 화가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초상사진이다. 케르테츠는 이 외에도 몬드리안에 관한 여러 점의 사진작품을 남겼는데, 이 작품은 몬드리안 개인의 온전한 표정과 포즈를 담고 있다. 케르테츠 자신의 예술적 비전이나, 심지어 모델이 된 화가의 예술 세계와는 무관하게, 여기에는 한 인간이 취하고 있는 순수하게 개인적인 포즈와, 그로부터 피어 오르는 그의 인격 전체의 분위기가 감돈다. 그의 사유(예술)와 전혀 호응하지 않는 비뚤어진 코와 약간 왼쪽으로 일그러진 얼굴 균형,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듯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히스테리컬한 손가락, 순수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아니 그래서 더) 고집스러운 지성을 품은 시선, 사회적 계급과 소박한 성품이 공존하는 듯한 옷차림, 단정하면서도 비뚤어진 넥타이, 넥타이를 꽉 조여 매어 주름진 와이셔츠, 그리고 낡아 보이는 외투, 날렵하면서도 안정되어 있지 않은 자세, 그리고 약간 경직된 자세 때문인지 움츠러든 목, . . . 이러한 시각적 요소들은 한 개인이 예술이라는 제도 속으로 흡수되기를 거부하고, 온전한 자신을 주장하고 있는 완고하기 그지없는 존재론적 무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사진은 사물의 거죽 즉 외양을 포획하는 일에 만족하는 매체라는 생각은 구시대적이다. 사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말에 따르면, 사진에는 “우리가 놓쳐버린 10%”가 있다. 만약에 진실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상 안에 있지 않다면, 틀림없이 우리를 빠져나간 그 10%에 있을 것이다.

사진의 무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