쁠랑세캉스와 사유의 내재적 구성

쁠랑세캉스와 사유의 내재적 구성

새로운 영화의 양상인 “감각-운동적 관계(행동-이미지)의 단절, 그리고 더 심층적으로는 인간과 세계(거대한 유기적 구성)의 단절”과 아울러 이미지는 형상들의 연합이나 은유와 환유의 거부는 쁠랑세캉스의 의미를 이미지 안에 사유의 내재성으로 규정하게 한다. 이미지 몽타주에 의한 사유의 파생이 아님. 사유의 내재성. 이것은 수학에서의 “정리”(theorem)의 기능을 가지게 한다고 들뢰즈는 보았다. “영화의 전개가 더 이상 이미지의 연합이 아니ㅏㄹ 정리가 되도록 하고, 사유가 이미지에 내재하도록 한다. . . . 이미지 내의 사유의 관계에 고유한 것이라 할 필연성이연속된 이미지들의 관계(쇼트-역쇼트)를 대체함으로써, 이제 더 이상 은유는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되고, 그것은 환유조차 마찬가지이다.”(영화2, 341) 은유는 이미지 외부, 즉 다른 것을 지시하지만, 플랑세캉스는 이미지 내부에서 사유를 구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쁠랑세캉스는 이미지가 외부와 관계하지 않고, 그 자체 내부적 체계를 갗진다는 점에서 수학적 엄밀함에 이르는 것이라고 들뢰즈는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논리적 자동기계, 즉 정신적 사유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존재론적 관점에서 볼 때, 쁠랑세캉스는 그 자체 외부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바쟁이 영화이미지가 연극과 달리 바깥으로부터 유입해오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이런 의미가 아닐까? (씨네마톨로지에서 쁠랑세캉스 부분에 각주로 추가할 것)

theorem은 하나의 체계, 공리계에서 공리와 정의로부터 증명된 수학적 참인 명제를 말한다. 그러나 정리는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가령,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2직각이다”라는 정리는 비유클리트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비유클리트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이직각보다 크다”라는 리만기하학의 정리도 된다. 즉, 정리는 특정하게 주어진 공리와 정의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영화적으로 볼 때 쁠랑세캉스에 적합한 체계로 보인다.

쁠랑세캉스와 사유의 내재적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