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이미지

정감-이미지

정동을 추출하는 두 가지 방식, 또는 두 방향의 지시체계가 있다.

하나는 얼굴화하는 것. 다른 하나는 불특정성을 도출하는 것.

퍼스의 기호 분류에 따르자면, 전자는 Icon(도상)에 해당하고, 후자는 Qualisign(특질기호)에 해당한다.

영화적으로 보면, 두 가지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드레이어 식의 클로즈업이고, 다른 하나는 브레송 식의 파편화.

문제는 파편화다. 공간을 행동적 공간이 아닌 정동적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불특정성을 부각시키는 것.

브레송이 그랬듯이, 이미지를 전체로부터 떼어내고 파편화하는 것.

비현실적 파편 이미지들은 현실적 이미지와 달리 다른 새로운 종속관계로의 가능성을 연다.

Joris Ivens의 영화 중에 Rain 이라는 영화가 있다. 비가 내릴 때 창가에 스치는 물방울, 아스팔트 위의 빗방울, 거리의 풍경 등, . . 불특정성의 극단적 이미지들이 나온다.

이 잠재적 이미지들이 뭐 어떻다는 말인가? 왜 이러한 불특정성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내야 하는가?

우선 생각나는 것은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다.

그러나 잠재적 이미지들은 감정이입된 의식에서 깨어나 실상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연결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필요하다. 기존의 연결, 현실적 연결, 실제적 연결이 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연결로 이행하려면, 특이한 지점이 필요한데, 이 특이한 지점이 바로 잠재적 이미지가 출현하는 순간이다. Ivens의 영화에 나오는 다리는 엔지니어가 최종적 이데아로서 생각하는 전체로서의 다리, 현실적 기능을 가진 그런 다리가 아니다. 부서지고 잘려지고, 마치 나뭇잎에서 떨어지고, 창가에 줄무늬를 내고, 아스팔트에서 도시를 비추는 다양한 인상들로 흩어지는 빗방울처럼, 철근 덩어리들의 불특정한 낯선 이미지들이 공간성을 잃어버리고 산발적으로 펼쳐진다. 이것은 다리의 순수가능성(pure possibility)이며, 이 순수가능성 속에서 새로운 연결이 열리게 된다.

따라서 예술이 정동을 추출하는 분야라면, 그것은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그 연민, 감정, 내적인 슬픔 등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감각적이고, 공간적이며, 지시적이고, 재현적이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얼굴을 통한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불특정성을 드러내서 세계를 새로운 연결로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는 점에서 예술이 중요한거다. 소외효과는 과거로 갈 뿐만 아니라(실상을 들여다보기), 미래로도 간다(새로운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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