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만 한다

읽어야만 한다

읽기는 무엇인가를 떠올리기이다. 읽을때 우리는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었던 모든 시간을 깨운다. 살아가는 동안 삶의 갖가지 필요와 환상들로 인해 굳은 살이 배겨, 지리멸렬한 정신적 기능들이 되어 버리고 만 그 시간을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삶의 불행을 부수기 위해 읽는다. 읽음으로써, 그렇게 퇴화되어 있었던 잠재적 본질들을 조금씩 조금씩 끄집어내어, 우리는 한줌을 쥐고는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 버린다. 읽기가 필요한 이유는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책을 쓴 저자의 정신세계를 본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 책과 저자가 우리에게 갈길을 예시해 주기 때문에 읽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들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미 나에겐 길이 있고, 나 자신이 이미 한 명의 저자인데. 책은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주기 때문에 필요하다. 다른 동료 예술가의 작품을 보며, 베끼거나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작품을 구상하는 예술가처럼, 우리는 책을 읽으며, 그 책의 저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으로 돌아간다. 프루스트의 생각처럼,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독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독자이다. 책과 나는 무관하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꼭꼭 숨은 한 귀퉁이의 짧은 구절이 나의 과거 전체를 감싸쥐고 있을지. 우리는 읽어야만 한다.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읽기는 우리를 머물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읽어야만 한다. 머물지 않기 위해.

읽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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