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모습

뒷 모습

Francis Bacon, Study for a Portrait of Van Gogh IV  1957

말이 없는 곳에 있다보면, 눈에 보이는 모습이 우리를 필요 이상으로 압도할 때가 있다. 특히 도서관에 앉아 있는 뒷 모습이 그렇다. 그는 항상 내가 앉은 자리에서 한 칸 앞 쪽에 앉아있다. 나와 마주보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어김없이 그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아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깔끔하게 올려친 뒷통수. 한 번도 벗어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그 고동색 얇은 반코트.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를 정리하거나, 잠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잘 때에도, 그는 언제나 그 코트를 입고 있다. 언제 드나드는지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조용한 걸음걸이. 가지런히 놓인 왼편의 책과 오른편의 노트, 그리고 노트 위에 검은색과 붉은색 두 개의 펜. 나는 한 번도 그와 마주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그의 앞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언제인가 3층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 쪽 아래 잔디밭 옆으로 그가 지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뒷 모습이었다. 연두색 잔디와 고동색 코트가 어울리지 않아서였는지, 그를 보며 잠깐 생각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멀리에서 보니, 꾸부정한 어깨임을 처음으로 알았다. 검은색 가방을 들고, 긴 우산을 지팡이처럼 짚어가며, 고개를 숙인채, 여전히 조용한 발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하늘엔 세상의 모든 구름들이 끝없이 엉켜있어, 그 회색빛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비가 올 것 같았지만, 정오가 훨씬 넘었는데도 비는 오지 않았다. 대신에 부드러운 바람만 불고 있었다. 그의 먼 뒷모습처럼.

뒷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