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복제

기계복제

모든 것이 기계적으로 복제되는 시대의 문제는 뭘까요? 이제는 상식처럼 되어버려 다소 진부해진 진단이지만 다시 한번 밑줄을 그으며 말하자면, 질적인 차이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질적 차이가 맨들맨들하게 코팅된 광택에 싸여 너도 나도 모두가 하나의 평면 위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진이 그 좋은 예입니다. 서로 이질적인 몸들이 거부감없이 소통되고 교환되어 만장일치적 삶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최근에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 이따금씩 젊은 학생들의 얼굴과 자태와 제스쳐 등이 잘 식별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제는 위계를 없애고 예술과 매체를 민주화하긴 했지만, 다른 한편 무차별적으로 자르고 봉합해서 세상을 동질화하는 위험도 안고 있습니다. 표현에 있어 질료적인 것은 사라지고 형태와 내용만이 남는 겁니다(복제는 광택은 있으나 투명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기계적인 복제가 가지는 두 가지 이중적 존재성입니다. 기계복제는 민주적이고, 민중적이고, 잉여실재적이고, 베르토프적이지만, 다른 한편 미국적이고 히틀러적입니다. 디지털은 어떨까요? 디지털은 질료를 복원시킬 수 있을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수잔 손탁은 예술의 투명성(transparancy)을 강조하면서 기계복제의 동질화 경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지만, 돌이킬 수 있을지는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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